예산을 확보하지 않은 채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어 해마다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무상보육의 일환인 ‘누리과정’이 경기도에서 파행을 맞았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8일 도의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며, 기존 교육부 관할이던 유치원 누리과정은 전액 편성했으나 보건복지부 소관이었던 어린이집 예산은 짜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종합 검토 및 시도교육감 협의 결과 2016년 세입 규모로는 예산 마련이 도저히 불가능했다”며 “정부에서 법적 문제 및 예산 지원 문제를 명확히 해결하지 않은 상황임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전액 미편성하게 됐다고 밝혔다”고 밝혔다.

이재정 교육감은 다음날인 9일 도의회 시정연설을 통해 "「영ㆍ유아보육법 시행령」과 「지방재정법 시행령」 등 시행령이 위법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이 아닌 시행령 개정을 통해 모법의 정신을 훼손하면서 그 책임을 교육청에 전가하고 있다"며 법적문제를 밝혔으며, "저소득층 급식지원을 제외한 순수 교육급식비 1,500억원, 혁신학교 운영비 252억원 등을 누리과정비에 모두 충당한다고 해도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 사업"이라며 정부의 예산 지원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임을 알렸다.

2016년 경기도 누리과정 총 소요액은 1조 559억원으로 작년대비 약 100억원 정도 증가했으며, 유치원 누리과정과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각각 5,100억원과 5,459억원에 달한다. 경기도교육청 총 예산이 12조 578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인건비를 제외한 본예산 총액의 29.2%에 달할 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렇게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떠맡게 된 후, 교육부에서는 단기 처방으로 지방채 발행을 통해 부족한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을 메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한 경기도 교육청의 지방채는 2016년 발행 예정 액수까지 합하면 3조 6천억에 달하는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 교육감은 이날 “우리는 (기존 관할이 아닌) 영유아 보육경비를 부담하면서까지 우리 학생과 학교에 돌아갈 당연한 교육 예산을 축소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고 밝히며, “만 3~5세아 보육경비를 의무편성하면 결국 학생들과 학교 교육사업은 황폐화 될 것"이라며 "국책사업으로 시작한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교육감으로서 우리 학생들의 권리인 교육 예산을 지키는 것이 교육감의 책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전국 교육감들 “편성 못해” 한목소리. 경상남도는 편성 강행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달 21일 "누리과정 예산편성은 법률적으로 교육감 책임이 아닐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시도 교육청 재원으로 편성 자체를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이렇게 전국의 교육감들이 ‘편성할 수 없다’며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직접 편성하겠다”고 강력한 시행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경상남도는 브리핑을 통해 "도 교육청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더라도, 우리 도에서는 소요예산 바편성하여, 보육료 지원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리고 그 금액만큼은 우리 도에서 매년 교육청에 지원하고 있는 교육비 특별회계 전출금에서 상계하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대구와 경북은 내년 유치원·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각각 6개월씩 균등 편성했으며, 울산도 6개월 이상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육대란 악몽 다시 돌아올까

이렇게 누리과정 편성이 정부와 시도교육청간의 치킨게임으로 변질되자 보육대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 이순희 의원은 지난 3일 정례회 5분 발언을 통해 “누리과정예산 미편성으로 인해 작년에 이어 학부모들의 혼란이 예상되고 있다”며 “(교육감의 의지대로) 유치원 예산만 편성한다면, 유치원과 어린이집 사이의 균등분배가 걱정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또한 “누리과정예산 미편성으로 인해 어린이집은 정원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2013년도 대비 어린이집 인원이 줄었음을 예시로 들었다.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표한 예산안에 누리과정 예산이 포함되지 않자 전국 어린이집은 이에 반발하며 집단 휴업을 한 바 있다. 내년 영아반(만 0~2세) 보육료 예산 삭감, 누리 과정(만 3~5세) 보육료 예산을 둘러싼 정부와 시·도교육청간 책임 떠넘기기에 민간어린이집들이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선언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9일 시정연설문을 통해 “저출산 고령화는 미래사회의 재앙이다”고 육아와 복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을 언급했으며, “보육시설 최적모델 개발 및 보급을 위해 경기도형 어린이집 7개를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겠다”고 도립 어린이집 9개 개설의 의사를 밝혔다. 보육 연정이 경기도에서 어떻게 실천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허민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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