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불렸다. 예의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이다. 특히 사회생활에 있어서 남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공손하고 삼가는 몸가짐을 말한다. 그 아름다운 동방예의지국이란 이미지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유효한지는 의문스럽다.

예의는 사회질서를 유지해나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핵심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 그리고 신뢰와 존중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상대를 짓밟고 공격해야하는 무한경쟁과 무한투쟁만 난무하는 듯하다.

그 단적인 예가 뉴스에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난폭운전자들의 폭력이며,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이다. 이웃 간에 약간의 배려만 있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를 점점 험악하게 만드는 이 무한투쟁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아래서부터 생기는 자연발생적인 것인가, 아니면 위에서부터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것인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위란 쉽게 말해 이 나라 정부와 위정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작년 4월 세월호 침몰이라는 참담한 사건이 있었다. 300명 넘는 어린 생명이 수장되었고, 그 유가족은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며 거리로 나왔다. 사건의 경위를 밝히라는 유족들의 목소리는 당연한 요구였다. 그때 반대편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반대 목소리를 내는 단체 중에 제일 멋있는 이름의 단체가 있었다.

그 이름도 거룩한 <어버이연합>이다. 어버이란 나이든 어른들에게 붙일 수 있는 최상의 존칭이 될 것이다.

예부터 동네 시끄러운 문제가 생겼을 때 동네 어른이 나타나면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다. 왜냐? 많은 경륜과 도덕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이크를 들고 광화문 거리로 나선 <어버이연합>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들이 진정 선한 어르신들이라면 유가족을 위로하며 함께 울어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른으로써 측은지심이다. 그런데 그들은 유가족을 종북 좌빨로 몰아붙였고, 유가족이 단식투쟁에 나서자, 바로 옆에서 <폭식 투쟁>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것은 나이든 사람으로 부끄러운 모습이며, 인간으로써 예의가 아니다.

다시 1년이 흘러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불붙었다. 역사란 어느 정권에서 고쳐서 다시 쓰고 할 정도로 가벼운 사안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역사학자 90% 이상이 신중론을 펴며 반대의사를 밝혔고, 그럼에도 정부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정부까지 무한투쟁을 선택하는 것일까. 오죽하면 어린 고등학생들까지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내며 거리로 나왔을까.

바로 그 반대쪽에 나타난 무리가 있으니 또 어버이 연합이다. 마치 미국 영화에 나오는 수퍼맨처럼 사회가 시끄러울 때 어김없이 출동하는 것이 어버이 연합이다.

어른으로써 반대의견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경거망동이 염려 되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럼 우선 조용히 나와서 젊은이들이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마이크를 들고 막무가내로 시끄럽게 반대만 외칠 뿐이다. 어느 노인은 군복에 검은 안경까지 쓰고 나와 소리 지르고, 어느 노인은 어디서 이미 한 잔 걸쳤는지 막걸리 냄새를 풀풀 풍긴다. 마치 싸움하러 나온 늙은 폭력배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이들은 이따금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이는 단정한 모습의 존경스런 어른의 모습도 아니며, 사회질서와 국가를 위함도 아니다.

어버이연합은 존경받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어른으로 존경 받을 수 있다는 평범한 상식을 깨우쳐야 할 것 같다. 존경하는 어르신 어버이연합, 아! 같은 나이대의 나로선 젊은이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오태영(극작가, 소설가)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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