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실시된 미얀마 총선에서 민주화의 꽃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이 압승하면서 이 나라의 군부 철권통치는 붕괴될 전망이다. 지난 1990년 총선에서 압승한 NLD를 인정하지 않았던 군부는 더욱 강해진 미얀마 국민의 민주화 열기와 국제사회의 감시 등으로 더 이상 시대적 조류를 거스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란 말을 증명하듯, 미얀마 국민 역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그동안 고난에 찬 피의 항쟁을 벌여왔다.

1999년 8월 8일 소위 ‘8888 항쟁’ 당시 군부의 민주화시위 유혈진압으로 수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피의 학살을 저지른 군부는 자신들의 집권을 영구화하기 위해 헌법에 각종 독소조항을 심어 놓았다. 상·하원 전체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하고, 외국 국적의 배우자나 자녀를 둔 국민은 대선에 입후보할 수 없도록 해 아웅산 수지의 대통령 입후보를 원천적으로 제한했다. 또한 군부가 국방부, 내무부, 국경경비대 등 주요 3개 부처 장관을 지명할 권리를 갖게 함으로써 언제든 민주주의를 흔들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숱한 악조건에서도 미얀마 국민은 1990년 처음으로 자유총선을 쟁취했고, 마침내 이번 총선에서 군부의 집권을 종식시킬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투쟁은 비슷한 고난의 길을 걸어온 우리나라에게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1960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를 붕괴시키며 민주화의 봄에 들떴던 4·19혁명을 짓밟았던 박정희의 군사군데타, 유신 암흑시대를 끝장내고 새로운 시대로의 꿈을 꿨던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을 짓밟은 전두환 군부독재의 등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이었다.

박정희, 전두환의 겨울공화국에서 수많은 학생과 국민들은 단지 자유와 정의로운 사회를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에서 고문을 받고 수년, 때론 수십년간 차가운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세계 그 어느 누구보다도 미얀마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성취에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단지 미얀마 국민의 이번 승리를 축하만 하기에는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이 너무나 어둡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독재시대에서나 있을법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며, 역사학자와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는 여론을 무시한다. 의원들 총의로 선출된 원내대표를 심판해 달라고 대국민 선동을 하는가 하면 국회의원을 심판하고 대신 진실한(!) 친박계를 뽑아달라고 선거개입성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지난 대선에선 국가정보원이 선거개입을 자행했고 한 공무원은 간첩으로 조작될 뻔 했다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수백명의 학생이 매장당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진실규명을 요구하며 평범한 시민에서 투사로 변해갔고, 제주강정기지 주민과 밀양 송전탑 반대 노인들은 일방적인 정부 정책 추진에 항의하다 공권력에 의해 짓밟혔다. 2009년 2000여명 희망퇴직과 180여명 정리‧징계해고, 26명의 희생자를 불러온 쌍용자동차 사태는 7년이 가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해온 박래군 인권운동가를 세월호 집회를 주도했다고 구속하는 현실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현 주소를 잘 보여준다.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노력과 투쟁은 여전히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땅,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하다. 민주주의는 어느 순간 갑자기, 또는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깨어있는 국민의 끊임없는 노력과 투쟁으로 하나씩 성취되어 지는 것이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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