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의 치고 빠지기식 개헌론 불지피기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이달 초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데 이어, 친박 핵심인 홍문종 의원 역시 얼마전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외교·국방·통일 등 외치를 담당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담당하는 총리로 역할을 나눈 이원집정부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홍 의원은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라는 구체적인 천기누설성 시나리오까지 밝혔다.

이후 윤상현 의원이나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개혁법안 처리나 민생에 힘써야 할 이때 개헌론은 홍 의원의 개인 생각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방중(訪中) 당시 "개헌논의에 봇물이 터질 것이고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며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 필요성을 제기했다가 반발한 청와대에 사과까지 해야 했다. 그만큼 개헌 논의는 레임덕을 불러오고 모든 사안을 집어삼키는 블랙홀과 같은 역할을 해서 최고 권력자는 논의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친박 주류에서 개헌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언급하니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대통령의 퇴임 이후의 안전 보장 및 친박계의 장기집권 플랜의 일환으로 국민을 상대로 여론탐색에 나선 것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다. 특별한 대권주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대구·경북(TK)의 절대적인 지지를 중심으로 영남 득표력을 갖춘 친박계가 내치를 관할하는 총리를 계속 배출하면서 박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장기간 권력 유지를 꾀하려는 속셈 아니냐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청와대의 총선 개입과 TK 물갈이론, 선거구 획정 관련한 여권 내 갈등으로 인한 여론 악화 등에 대한 국면전환 효과는 이미 거뒀다는 평도 나온다.

개헌론은 자칫하다간 현재 국회에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정부의 4대 부문 개혁 추진 동력을 상실할 수 있고 권력의 몰락을 야기할 수도 있는 휘발성 강한 사안이다. 따라서 현재 친박계가 치고 빠지기식의 모습을 보이는 건 여론을 탐색하면서 상황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박계가 전·현직 각료와 청와대 고위 참모 출신 등을 TK와 서울 강남 등 여권 주요 지역구에 집중 배치하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한 후 개헌론을 본격 제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 집권 초기에는 개헌론을 막다가 말기로 가면서 권력누수가 진행되고 퇴임 이후의 안전판을 마련할 필요성 등으로 개헌론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의해 제기되는 개헌론은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실패한 것이 그동안의 개헌론의 역사이다.

현재 대선주자 여론 조사를 보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가장 높은 지지도를 받고 있다. 또한 반 사무총장을 지지하는 ‘친반연대’가 지난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 신고를 마쳤다. TK 기반의 친박계로선 충청 출신의 반 사무총장을 대통령 후보로 밀게 되면 승리는 확실하다고 판단할 것이고, 반 사무총장과 권력을 나누어 갖고 싶을 것이다. 지난 9월 유엔 총회 참석 당시 대통령이 무려 7번이나 만남을 가지며 교감을 나눈 것과 집권 후반기를 향해가는 친박계가 분권형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야권이 분열로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친박이 내년 총선에서 대거 당선되면서 여권이 압승한다면 여권발 개헌론은 토대가 마련된다. 여야 할 것 없이 150여 명의 국회의원이 개헌추진모임에 함께 하고 있다는 점도 개헌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이다. 87년 민주항쟁의 성과를 가로챈 3김 시대의 잔재인 5년 단임 대통령제, 1인체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인식도 높다.

그러나 권력구조 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은 친박계 등 일부 정파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정략적으로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향후 국가 운영의 근본 틀을 바꾸고 한국사회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헌법 개정 논의가 정치권에 한정되어서도 안된다. 친박계가 헌법 개정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정직하게 총선이나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길 바란다. 아울러 각계각층의 충분한 여론수렴과 투명한 논의 등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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