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풍운아이자 승부사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새벽 서거했다. 이로써 숙명의 라이벌로 민주화와 지역주의를 상징하던 김대중 김영삼 양김 시대는 완전한 종말을 고했다.

27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9선의 국회의원과 대통령까지 역임하면서 김 전 대통령이 한국사회에 남긴 ‘빛’과 ‘그림자’는 너무도 크다.

먼저 그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서슬 퍼런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서 물러섬 없이 치열하게 싸워온 열혈 민주투사였다. 유신 막바지였던 1979년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이 신민당사 농성에 돌입했을 때 야당 총재였던 그는 노동자 편에 서는 등 박정희 독재에 맞서다가 초유의 의원직 제명까지 당했다.

하지만 박 정권의 탄압은 그의 정치적 근거지인 부산, 마산에서의 부마항쟁을 불러왔고, 안가에서 유흥을 즐기던 박정희는 자신의 심복에게 총을 맞아 죽게 되는 ‘10·26사건’으로 몰락한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언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80년 민주화의 봄과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등장한 전두환 신군부 시절에도 그의 민주화 투쟁은 꺽이지 않았다. 1983년 민주인사 석방을 내걸고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이며 전국적 반독재 투쟁의 도화선을 만든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그의 민주화에 대한 도전과 승부사적 기질은 이어졌다.

1993년 14대 대통령으로 ‘문민정부’ 시대를 연 후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하며 공포의 대상이었던 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일거에 척결했다. 그의 결단과 용기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군의 정치개입을 막아낸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정치와 경제에서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전격적으로 시행한 공직자 재산공개제도와 금융실명제 도입도 그의 커다란 업적이다. 자신과 부인의 재산공개를 감수하고, 부정한 돈과 지하경제를 줄인 획기적인 개혁조치였다. 시대정신을 꿰뚫은 과감성과 리더쉽에 열광하며 당시 90%에 가까운 국민이 김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를 지지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역사적 공(功)은 여기까지이다. 그의 공 못지않게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에 끼친 과(過)는 깊고도 심각하다.

87년 6월 들불처럼 일어났던 국민의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 투쟁의 성과로 전두환 군사정권이 밀려나면서 실시된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 양김은 권력욕을 놓지 못하고 후보단일화와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양김의 분열은 김종필 유신잔재 세력과 함께 선거때마다 전국을 영·호남·충청 등으로 갈갈이 찢어놓으며 정상적인 정치의 작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이듬해 총선에서 제2야당으로 전락한 김 전 대통령은 1990년 1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희한한 말을 남기며 군부독재와 결탁, 지역감정을 이용한 보수대연합의 정치야합을 선택했다. 그동안의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버리고 배신과 변절의 길로 돌아선 순간이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정치적 좌우명과도 어울리지 않는 행보였다.

역사적 퇴행이었던 3당 합당 이후 지역감정과 민주화세력의 분열은 망국적인 수준으로까지 고착됐다. 민주의식과 야성(野性)이 강했던 부산 경남 지역 시민들은 보수화되고 지역감정의 포로로 급변했다. 영남과 호남 사람들의 상당수는 양김의 권력욕과 선거에서의 표를 획득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농간으로 인해 아직까지 맹목적인 지역주의의 포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김 전 대통령들의 권력욕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그늘을 만들었는지, 그 폐해가 앞으로도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인지 가늠조차 힘들다.

뿐만 아니라 임기 말로 가면서 경제문외한이었던 김 전 대통령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섣부르게 받아들이며 OECD 가입과 자본시장 개방, 정리해고 노동악법 날치기 통과, 재벌 개혁의 지연 등으로 결국 1997년 외환위기를 불러와 국민의 삶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민주화 투쟁의 화신이었지만 양김은 역설적으로 돈 공천, 제왕적 총재, 가신정치 등 권위주의의 구 정치인 이미지로 점철돼 늘상 정치개혁의 주요 대상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전국이 애도의 물결로 넘쳐나고 장밋빛 평가만 난무하는 이때, 그의 공과(功過)에 대한 더욱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한국사회를 한단계 발전시킨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공’ 못지않게 그가 남긴 ‘과’ 로 인한 폐해를 얼마나 제대로 극복하는지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아들’ ‘상주’를 자처하며 그의 죽음과 장례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이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다. 박정희의 후예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독단과 민생파탄으로 거리로 나오는 국민들을 물대포로 위협하고, 대통령이 앞장서 삼권분립을 훼손하면서도 오히려 법질서 확립이라는 미명하에 반대자들을 탄압하며 공안정국으로 몰아가는 듯한 인상이다. 양김 시대의 절대적 과제였던 지역감정 극복, 민주주의 실현, 정치개혁은 여전히 한국사회에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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