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를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해 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28일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 타결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10억엔(한국 돈 100억원)의 피해자 지원 예산을 내놓기로 했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화로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이전에 협조하고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어 더 이상 국내외에서 이를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식민지 침략의 제국주의적 DNA를 가장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아베 정권과의 이번 합의는 위안부 할머니를 두 번 죽인 역사적 비극의 야합이다. 중국의 부상에 맞선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 강화를 꾀하고 있는 미국의 적극적인 독려 속에 진행된 한일 정부 간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은 철저히 무시된 채 진행됐다.

이번 합의의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이라는 표현에 불과할 뿐 일본의 공식적인 국가적·법적 책임 인정이 없어 껍데기에 불과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위안부의 존재는 1991년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처음 드러났다. 그러나 일본은 그동안 박정희 정부가 1965년 일본과 맺은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위안부 강제 동원의 법적 책임이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 왔다. 이날의 합의 결과 역시 ‘군의 관여’와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수준에 그쳤을 뿐 일본 정부 차원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인정이 아니다. 이후 일본 정치인들이 법적 책임 인정이 아닌 도의적 차원이라고 발뺌하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게 됐다.

박근혜 정부는 또한 소녀상 이전의 협조를 약속함으로써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국민적 자존심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겼다. 정부가 무슨 권한으로 민간 차원의 제국주의적 반(反)인도적 만행에 대한 고발과 저항까지 막겠다는 것인지, 이런 독재적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묻고 싶다. 정부 독단으로 돈 몇푼에 민족의 영혼과 정신을 팔아먹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무엇보다도 정부 차원에서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이후 유엔에서의 위안부 문제제기나 민간 차원에서의 일제 만행에 대한 고발이 힘겹게 됐다. 마치 그동안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부적절하게 일본을 험담하고 다녔다고 인정하는 꼴이다. 이후 한일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합의한 것은 외교의 ABC도 모르는 저차원적인 수준이다. “세계적인 여성인권 이슈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한국 외에도 10개국에 흩어져 있다. 타국 피해자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한일간 좁은 의미의 외교문제로 축소, 폄하하고자 하는 일본의 의도에 그대로 말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말로는 사과한다고 하면서 소녀상을 반대하고, 미국 교과서에 들어있는 위안부 관련 문구를 빼라 하고,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는 책을 미 정치인들과 학자들에게 뿌리는 일본이 이번 합의안 뒤에서 웃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는 가주한미포럼 김현정 사무국장의 말은 너무도 뼈아프다.

반면 일본이 일시적인 아베 총리의 사죄·반성에도 불구하고 이후 침략 전쟁에 대한 부인, 교과서 역사왜곡, 위안부 할머니를 욕보이는 망언 등을 계속 할 경우 한국은 이를 제재할 별다른 수단이 없다. 벌써부터 아베의 부인 아키에(昭惠)는 한일 합의 당일인 28일 일본 전범자들을 참배하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놓아 우리 국민을 조롱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전화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했다는 정부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당사자인 아베는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한일 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해결됐다는 일본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하거나 “차세대에 사죄의 숙명을 지지 않게 하기 위한 합의”라는 식으로 발언하면서 이번 합의의 속뜻을 분명히 드러냈다. 기시다 일본 외상 역시 위안부 지원 기금이 “(법적) 배상은 아니다”라고 강조함으로써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우리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고작 100억원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 박근혜 정부의 안일한 역사 인식에 할 말을 잃는다. 어쩌면 일제부역과 쿠데타, 독재의 악명을 쌓은 아버지의 어두운 과거를 안고 있는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추진할 때부터 이번 야합의 참상은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청와대와 정부는 “일본 정부가 책임 통감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 아베 총리가 처음으로 내각 총리 대신 명의의 사죄ㆍ반성 입장을 표명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면서 “24년 간 결실을 맺지 못한 협상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생각이 없는 듯하다. (협상 내용을) 전부 무시하겠다”(이용수 할머니), “이렇게 고생하고 기다렸는데 정부에 섭섭하다. 우리는 돈보다 명예를 회복 받아야 한다”(이옥선 할머니)는 등 강한 울분을 터트렸다.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애써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도 “피해자들의, 국민들의 바람을 철저히 배신한 외교적 담합”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의 빈약하고 왜곡된 역사 인식이 위안부 합의 파문의 근원이지만 이와 같은 민족사적,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수렴이나 국민적 공감대 없이 독단적으로 회담을 타결하는 박근혜 정부의 비민주성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번 합의 결과로 인한 사회적 분열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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