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토론에 나섰던 의원들이 만민공동회에 참석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끌어 모았던 필리버스터가 지난 2일 더불어 민주당 지도부의 결정으로 중단된 후 마지막 주자로 나섰던 이종걸 원내대표가 국민에게 전한 말이다.

192시간, 38명의 의원이 참가한 필리버스터가 중단되고 본회의를 통해 테러방지법이 원안대로 가결되기 몇 시간 전인 2일 오후 4시, 필리버스터의 주역들이 국회의원관 대회의실에 다시 모였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다.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의 대응책이었던 ‘필리버스터’는 영국 타임즈도 기존 필리버스터가 단지 시간끌기용으로 ‘전화번호부’나 ‘굴튀김 요리법’ 따위를 읽었던 것과 달리 논리적인 법안 비판이 발언의 주를 이룬 것에 대해 “로마의 수사학적 연설무대를 연상시킨다”고 극찬한 바 있다.

국회TV와 대안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던 이번 필리버스터는 뉴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층에게 ‘마국텔(마이국회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의 패러디)’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큰 지지를 받았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은 실시간 검색어에 랭크됐으며, 3~5천원 단위의 소액 후원금까지 쏟아졌다. 그러나 기존 3월 10일까지 계속될 줄 알았던 것이 별도의 협의 없이 급작스럽게 중단되자 “다시는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하며 극단적인 반응까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자리에서 의원들은 당의 결정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혔다. 필리버스터 초반 10시간 18분의 기록을 남겼으며, 조기중단을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은수미 의원은 이 자리에서 “드릴말씀이 없다”며 “당을 존중하지만 국민의 뜻도 존중한다.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이학영 의원은 “힘이 되어 드려야 하는데 실망시켜 드려 죄송하다”고 말문을 열기도 했으며, 배재정 의원도 “정치에 대한 기대를 땅에 떨어뜨려 깨트려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당내 중진의원인 추미애 의원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민주당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여당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제대로 토론이 안됐기 때문에 벌어진 전략 미스도 있다”며 “대통령이 국회를 압박하는 것에 내부투쟁을 하느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발언했다.

더민주가 3월 10일 임시회 종료까지 필리버스터를 밀어붙이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20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이다. 총선이 지연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야권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선거법 처리를 미루는 것은 큰 위험부담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선거 전 40일부터 49일까지 ‘재외선거인명부’ 작성을 해야 한다. 이 마지막 데드라인이 3월 4일이었다. 작성된 명부를 확인해서 3월 14일(선거일 30일 전)까지 확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3월 4일 전까지는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실제 종료일은 4일이 아닌 2일이었다. 4일까지도 버티지 않은 것에 대해 신경민 의원은 “3·1절이 징검다리연휴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휴가 끝나 국민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기 전까지는 상황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당 지도부에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어 신 의원은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종걸 원내대표가 처음 ‘필리버스터 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을 때는 반신반의했다”고 전했다. 정보위 소속인 그가 보기엔 전문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몇 명의 의원이 토론에 자원할지 의문이 들었고, 또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잘못 다뤘을 땐 보수언론들의 공세에 여론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3만명이 꾸준히 생중계를 지켜보고, 국회tv시청률이 20배 증가하는 등의 결과를 낳은 것에 대해 “내가 틀렸다. 기분 좋은 오류였다”고 전했다.

현재 필리버스터 중단과 테러방지법 원안 통과에 대해 '역풍 콤플렉스라는 지적까지 등장하며 더민주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무제한 토론을 통해 “누가 확신 없는 야당을 두려워 하겠나”고 일갈한 바 있다. 이날 의원들은 “이러한 문제들이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20대 국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며, 여소야대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민지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