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마을로 유명한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에는 조선중기 이상 정치를 꿈꾸었던 신진 사림 세력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육괴정(六槐亭)‘ 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천시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된 육괴정은 1519년(중종 14년) 기묘사화로 낙향한 엄용순(嚴用順)이 건립한 정자로 처음에는 초당(草堂)이었으나 여러 차례 중건하여,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얹은 본 건물과 이를 둘러싼 담장과 대문이 있는 사당의 형태로 변모하였다. 본당은 정면 9m, 측면 3.78m 규모이며, 내부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이 세종대왕의 영릉을 훼손하려 하자 이를 막아내기 위해 전투를 벌이다가 패배하여 순절한 엄용순의 손자 엄유윤의 충신정문과 ‘남당엄선생육괴정서(南塘嚴先生六槐亭序)’, ‘육괴정중수기(六槐亭重修記)’ 등의 현액이 걸려 있다.

조선중기에 발생한 ‘기묘사화’는 기득권 세력과 신진 개혁 세력의 충돌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기존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세력 기반을 혁신을 꿈꾸는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 세력이 제거하려하자 이에 반발해 조광조 일당이 임금을 속이고 국정을 농단했다는 죄를 걸어 조광조 등 많은 신진 세력을 유배 내지는 사약을 내려 처형한 사건을 말한다.

기묘사화를 기점으로 많은 젊은 선비들이 이천으로 내려왔다. 육괴당을 건립한 남당 엄용순은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들이 대거 숙청되자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화를 당한 아버지의 묘가 있는 경기도 이천 도립리로 낙향하여 은거 생활을 하였다.

남당은 사육신으로 알려진 성삼문과는 재종간으로 생육신 성담수의 동생인 성담령을 비롯하여 조광조 등과 함께 김굉필의 제자로 기묘사화 때 겨우 화를 면하고 파직되어 이천으로 내려온 성리학의 대가이다. 시문에도 뛰어난 김안국, 기묘사화 때 파방이 되어 과거 합격이 취소되었고 현량과가 복구되어 전적(典籍)에 올랐으나 부임하지 않고 낙향 백사면 우곡리로 내려와 학처럼 살았던 강은, 시와 해금을 벗 삼고 살았던 오경, 《중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으며 병조참지, 병조참의, 예조참의 등을 거쳐 좌승지를 지낸 임내신 등과 함께 육괴정에 모여 세상을 등진 채 시회와 학문을 강론하며 우의를 다지고 도를 즐겼다. 이들 6명의 선비를 ‘괴정육현’이라고 부른다.

괴정육현의 선비들은 벗들과 의와 우정을 기리기 위해 정자 앞에 연못을 파고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는데 세 그루만 남았고 후손들이 나머지 세 그루를 다시 심었다. 처음 심었던 세 그루는 지금까지 남아 500년 이상의 세월을 간직한 보호수로 지정되어 산수유 마을을 지키고 있다.

육괴정앞에는 이천의 옛 지명인 남천고을의 연못이라는 뜻으로 ‘남당’이라는 조그만 네모난 연못이 있는데 그 당시 만들어진 연못은 그 흔적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상정치의 실현과 근본적인 개혁을 추구했지만, 현실 정치의 장벽에 부딪쳐 결국 좌절하고 말았던 신진 사림세력들의 열정이 육괴정 주변 산수유 붉은 열매로 승화되어 서늘하게 남아있다.

정찬송 기자  goodj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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