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퇴근 버스에서 내리면 눈에 얼갈이 봄배추가 나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하고 먹는 둥 마는 둥 주변을 돌아볼 시간 없이 지친 몸을 움직여서 퇴근하는 버스에서 시달리다가 내리면 제일 먼저 야채와 과일, 해산물 등을 펼쳐놓은 마트가 나를 반긴다. 그 중에서 봄 얼갈이배추가 나의 눈길을 자극하지만 내가 구입해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3월이 되면 겨우내 먹던 김장김치가 너무 시어버려 양념 등으로 다시 새롭게 변신시켜 먹다가 싱싱한 봄동으로 담근 김치가 입안에 군침을 흘리게 한다. 이 무렵이 되면 김치는 김장배추가 아닌 봄동배추로 담근, 냉이와 달래의 향기 진한 것이 아닌 김치의 시원함과 싱그러운 싱싱한 김치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맛 느낌 이면에는 내 나이에 맞는 세월의 흐름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학교급식으로 부모가 도시락을 싸줘야 할 걱정이 없지만, 나의 경우에는 맥스웰 커피 병에 김치며 깍두기 등을 넣어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시던 어머님의 정성이 가장 풍요로웠다. 더구나 계란 프라이라도 도시락 밥 위에 올려 주시면 자식 입장에서도 최고였던 기억이 새롭다. 진달래 개나리 등이 질 무렵 봄동으로 담근 김치가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일제 강점기를 겪으신 선친은 봄나들이 갈 때 단무지 싸서 만든 도시락이 최고라고 하셨지만 나는 봄동으로부터 시작해서 김장하기 전까지 얼갈이배추로 만든 김치가 진짜 맛있다는 생각이다. 지금이야 현대기술의 발달로 김치 냉장고에는 김장김치가 가득하다.

우리 집 4식구의 경우 약 60포기 김장을 하면 다음 해 가을 김장김치를 다시 할 때까지 충분히 먹는다. 더구나, 김치만두를 좋하는 우리 가족은 겨울에 2번 정도 김치만두를 해먹어도 충분하다. 그러다 보니 얼갈이배추로 만든 시원한 김치는 손맛 좋은 음식점 사장님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런 음식점의 대부분은 산 밑에 농사짓는 분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이고 도심지의 음식점에서는 만날 수 있는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

이 봄동김치의 또 다른 추억은 냉장고 하나 없이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넣어 김치를 보관하던 방식이 아니라, 줄을 매달 수 있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사다 우물 속에 넣어 보관하던 김치라는 것이다. 그 우물 속에 김치가 참으로 묘하게 입맛을 돋우었다는 생각이다. 그 중 백미는 바로 그 김치에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넣어서 밥을 비비면 그게 아주 환상적인 맛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루어가는 것은 문화이다. 그 문화는 의식주(衣食住)로 분류하는데, 그 중에 먹는 문화 또한 시대를 알 수 있는 한부분일 것이다. 기운이 새롭게 시작되는 싱그러운 활기찬 봄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그 음식에 깃들어있는 가치를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런 봄동의 추억 속에는 어머니가 보인다. 그리고 봄동으로 인해 나 자신과 주변사람들이 더욱 풍요로운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퇴근길에 만난 봄철 얼갈이 봄배추 포기 속에 어머니의 미소가 보인다.

김정희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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