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5박 6일간 떠들썩한 대권행보를 마치고 지난달 30일 한국을 떠났다. 누가 봐도 반 총장의 이번 행보는 대통령의 욕심을 품고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정치일정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면서도 다행인 것은 이번에 그의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왜 그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지’를 분명하게 각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는 대권의 욕심만 있을 뿐 서민의 고통을 이해할 의사가 없고, 빈부격차 등 갈등으로 들끓고 있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평생 외교관의 길을 걸어와 처세에만 능해 ‘기름장어’라는 별칭을 듣고 외신으로부터 ‘역대 최악의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혹평을 얻고 있는 그가 복잡한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정치를 제대로 잘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가 방한 중에 보여준 정치적 메시지나 만난 사람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구시대적 인물인지, 새 시대를 열어나갈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지 분명하게 드러났다. 한마디로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과는 역행하는 인물이다.

세월호 가족이나 백남기 농민, 실업으로 고통 받는 청년, 묻지마 살인에 위협받는 평범한 여성, 위안부 할머니,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 등은 그의 시선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대선 출마에 도움이 될 노신영 씨 등 전직 총리, 장관, 주류 언론인, 롯데그룹 재벌인사 등이 롯데호텔에 초대되어 그들만의 연대를 과시했을 뿐이다. 아마도 기득권 세력을 묶어내는 것이 자신의 대통령 꿈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첫 일정인 관훈 클럽에서 그는 “남북 분단도 큰 문제지만 (남쪽) 내부에서 분열된 모습이 해외에서 보도되는 모습을 보면서 창피할 때가 많다”고 오만하고 국민을 모욕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한편으론 “국가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며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자신을 차별화하는 전략을 썼다. 제3의 인물들이 정치에 등장할 때 항상 써왔던 수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후 그는 자택으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를 찾아가 충청 대망론을 자극시켰고, 경북 안동으로 달려가 제왕목을 심는 등 충청-TK 지역 연합의 적임자가 자신임을 보수 세력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국가 간 분쟁과 갈등의 조정, 세계의 평화를 위해 맨 앞에서 치열하게 헌신하는 자리인 유엔 사무총장이 모국에 돌아와 기껏 흘러간 지역주의를 되살리며 사회분열을 조장하니 한심할 따름이다. 총선에서 참패하고 대권주자가 몰락한 친박과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알현하듯 그를 따라다니며 반기문 찬양가를 부르니 그 경박스러움은 가히 국치라 할만하다.

유엔 사무총장이 임기도 마치기 전에 고국으로 돌아와 대권행보를 하는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황당한 짓이다. 벌써부터 AFP 통신, 산케이신문, 텔레그래프 등 외신들은 반 총장의 행보를 비판하면서 “유엔 역사상 최악의 사무총장일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울 정도로 말솜씨가 없는 반기문 총장이 한국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차기 대통령 유력후보”라는 등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국가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정치 불신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평생 외교관의 삶만 살아왔고 최근엔 해외에서만 10여년을 보낸 고령의 인물에게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길 만큼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가계·국가부채가 1300조원대로 역대 최대이고 핵심기업과 산업의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경제와 민생이 파탄난 엄중한 상황에서 정치력이 검증되지도 제3의 인물에 휘둘릴 국민도 이젠 아니다.

한껏 대권행보를 벌였던 반 총장은 한국을 떠나기 전 “방한 중의 활동에 오해가 없기 바란다. 개인적인 목적이나 정치적 행보와는 전혀 무관하게 오로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행사를 주관하기 위해 온 것이다. 남은 임기를 잘 마치도록 국민 여러분이 도와 달라”는 말을 남겼다. 국민이 더 이상 실망하지 않도록 내년 대선이 끌날 때까지 이런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바란다. 대통령과 친박계도 총선민의를 받들어 반성과 혁신으로 당을 환골탈태하기는커녕 반 총장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여 나라를 망치는 정신 나간 짓거리는 이제 중단해야 한다. 집권세력의 수준이 이정도니 나라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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