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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껴안아 주세요, 부여 내산면 천연기념물 320호 은행나무
김소라 기자 | 승인 2016.06.06 23:04

부여는 백제의 옛 도읍지로 크고 작은 유적지가 즐비한 곳이다.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이기도 하고, 역사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학습적인 목적에서도 여러 번 가보아야 하는 관광지다. 부여의 낙화암, 부소산성, 백마강, 정림사지 5층석탑, 무량사, 능산리고분군 등 도시 전체가 거대한 역사교과서다. 최근에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가 부여문화원에서 시민을 위한 답사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가 부여에 ‘휴휴당’이라는 방 한 칸짜리 집을 짓고 ‘쉬는 집’으로 삼고 있다. 이와 함께 특별한 부여의 무언가를 소개하고 싶다. 부여 여행에서 기억에 콕 박혔던 곳이기도 하다.

부여29번 국도를 따라가다 40번 국도로 갈아타면서 좁아지는 길이다. 무량사 가는 길목 오른편에 ‘내산면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라는 표지판이 있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천년 넘은 은행나무의 위용은 과연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자동차 핸들을 돌려 은행나무를 보러 내산면의 녹간마을로 들어섰다. 친절한 이정표 세 개를 만났는데, 갑자기 이정표가 끊겼다. 마을 공용 화장실 및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간에 잠시 차를 세우고 주민 한 분께 물어 보니, 이곳에 주차하고 1분만 올라가라 한다. 잘 찾아 왔다. 정확한 주소는 충남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 148-1번지다.

농로를 따라 창밖의 모내기 한 논의 풍경을 보면서 시원하게 달리며 찾아온 천 살 나이의 은행나무. 그 위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들어올 정도의 거대한 크기다. 면적은 1.159평방미터이고, 높이는 30미터, 둘레는 9미터다. 성인 남자 네다섯이 껴안을 정도의 둘레다. 가지가 사방으로 30미터 이상씩 뻗어져나간 터까지 합쳐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나무의 전설이 있다. 백제 성왕 16년 (538년)에 좌평 맹씨가 심었다 전해진다. 당시 전염병이 돌 때에도 이 마을만은 화를 면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험한 나무의 기운이 소문나자 은산에 있는 승각산 주지가 대들보로 쓰기 위해 나무의 가지를 베었다가 화를 당했단다. 사실 은행나무는 공자의 유교와 관련이 깊다. 내산면 주암리의 은행나무 앞에는 ‘행단’이라 적힌 비석이 있다. ‘행단’(杏亶)은 공자 45대손인 공도보가 그의 조상묘를 중수할 때 강당 옛 터에 돌로 단을 쌓고 은행나무를 심어 행단이라고 명명한 데서 시작된다. 중국 산동성 곡부에 있는 공자 묘 앞에 있는 행단이 가장 오래됐다. 공자의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를 의미한다. 행단이 이 마을에 있다는 것은 아마도 백제 시대에 심은 나무였지만 이후 인근 지역이 유교적 전통이 강했음을 추리할 수 있다.

은행나무 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나무의 소리를 들었다. 한참이 흘러도 사람 하나 오지 않는 인적 드문 마을이다. 은행나무의 스토리로 나름 이야기 풍성한 마을로 특화할 만도 한데 조용하다. 빛이 바랜 은행나무 벽화그림이 몇몇 집에 그려져 있었지만 퇴색되었다. 조용히 천연기념물 320호 은행나무를 보고 가는 것만으로 족하라는 뜻일까.

사람들마다 여행의 기준이 다르다. 유명 관광지의 코스를 경제적으로 다 돌아야 하고, 맛집으로 손꼽는 곳에서 밥을 먹으며 인증샷을 남기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현대인들. 이정표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은 꼬불거리는 시골길을 달려 은행나무 한 그루 보자고 여행가자 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런지 모른다. 하지만 부여군 내산면의 은행나무를 만나고 나면 달라질지 모른다. 1000년 이상의 시간을 묵묵히 견딘 은행나무의 강인함과 시간의 힘을 내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무는 여름의 푸른 잎에서 가을의 노란빛으로 물들어가며 후두둑 은행이 잔뜩 떨어질 무렵까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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