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아이 넷을 키우는 선배 기자가 있다. 선배는 취재원에게 자녀수를 얘기하면 백이면 백 이런 말을 듣는다고 했다. “기자님, 돈 많이 버시나 봐요.” 처음에는 ‘아이=돈’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다소 불편했는데,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라고 했다. “우리 집은 영화 한 편을 봐도 돈 10만원 우습게 들어. 예매하고 팝콘 사먹으면 말 다했지.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어.”

이 대화를 나눈 게 벌써 1년 전. 그때 나는 내 인생에 아이를 선명하게 그려본 적이 없던 신혼이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보니 선배의 말이 (이제야) 가슴에 와 닿는다. 산부인과 검진 시 돈 10만원 나가는 건 껌이고, 임산부에게 제공되는 50만원 상당의 사회서비스 바우처 ‘국민행복카드’는 이미 동난 지 오래니까.

어찌 보면,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 출산을 안 하고 미루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각종 설문조사 결과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는데 ‘저출산 극복’이니 ‘출산장려’니 이런 단어들이 눈에 들어 올 리가 없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이대로 가다간 2060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노인 80명을 부양해야 할지 모른다고 한다니 그것도 참 무섭다.

정부는 ‘저출산의 재앙’에 맞서 하나 둘씩 뭔가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각종 네트워크며 대책위원회를 설립하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등을 발표하고 있는 걸 보면. 경기도 역시 지난 6월 ‘저출산 극복을 위한 복지부-경기도 현장소통’을 열고 도의 저출산 위기대응 주요 추진사항을 점검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자인 나는, 아니 임산부인 나는, 대한민국 시민인 나는 정작 이런 움직임에 공감이 안 간다. 정부가 제시한 진단과 방향, 메시지에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구체적 대안에는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각종 정책제안이나 토론 등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일단, 임신을 하면서부터 절실히 느꼈다. 우리가 정작 필요한 건 공익광고를 통한 ‘분위기 조성’도 아니고, 실질적으로 와 닿는 ‘정책’이요 ‘서비스’라는 걸. 이를테면 이런 거다. 산부인과 진료비 낮추기, 지자체에서 출산육아용품 지원받기, 육아지원시설 늘리기 등등.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만 개선되어도, 각종 위원회를 만드는 데 몇 조를 투자했다는 말이 속 쓰리지 않을 것 같다.

또 하나, 정보가 흩어져 있다는 점도 탐탁지 않다. 국민행복카드를 비롯해 보건소 이용여부 , 아이돌보미 서비스, 장난감 도서관 서류지원 등 공공기관별, 부서별 정책이 다르다보니 정보에 빠삭한 엄마들만 수혜를 입는 경우가 적잖다. 정부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통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도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거라고 본다. 임신부터 출산, 보육까지 각 기관별로 어떤 정책이 마련되어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통합 팜플렛’만 만든다면 (아니, 메일로라도 예비맘 들에게 발송해준다면) 말이다.

사실 기자가 제안한 대안이 마음에 안 드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마 셋째, 넷째를 둔 다둥이맘 들은 더 할 말이 많고 아이디어도 좋을 거라고 본다. (엄마들에게 카카오톡 온라인 설문조사라도 시행해 봐라. 수많은 의견이 쏟아질 것이다.)

요지는 다함께 공론화하는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고선 결코 출산율이 증가세로 반전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더 이상 전문가라 불리는 자들만의 리그에 매몰돼 공익광고에 그치는 전략과 메시지로 저출산 해법을 제시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소영 기자  hanasik2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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