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백주에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독극물로 피살됐다. 대북 문제의 특수성으로 인해 ‘몇 년 전 김정남이 살려달라는 편지를 김정은에게 보냈다’거나 한국 망명설, 포악한 김정은의 돌출적 성격 등 국정원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보당국 및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김정은이 자신을 위협하는 김정남을 제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 체제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김정남을 대안으로 삼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악화까지 무시하고 김정은이 이모부인 장성택에 이어 인척 살인이라는 패륜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정보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공포정치를 강화해 북한의 엘리트들에게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고 권력기반을 공고히 다져야 할 김정은이 암살 배후로 의심받는 것은 당연하다.

한·미·일·중 등 국내외 관련 국가들은 12일 고체연료를 이용한 무수단급 개량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13일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발생하자 사실관계 파악 및 한반도 정세에 미칠 상황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불순하게도 일부 정치권 및 보수언론에서 이 사안을 활용해 효과에 대한 의문과 함께 중국과의 마찰로 인한 경제위기 심화를 낳고 있는 사드배치의 당위성을 강조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심지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중심으로 야당 대선후보를 ‘안보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소재로 활용하면서 대선정국의 신(新)북풍으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사드배치 결정을 다음 정부로 넘기자”거나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풀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갈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를 안보 불안 세력으로 몰아 대세론을 깨려는 정치 시나리오가 작동 중인 셈이다.

안보에 있어 수구 보수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바른정당 대선주자 유승민 의원은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김정남 암살, 이 두 가지 사건을 보며 우리의 국가 안보 태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면서 “인구 절반이 거주 중인 수도권은 성주 1개 포대로 보호되지 않는다. 2~3개 포대를 우리 예산으로 주문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사드를 추가 구매하자고 주장했다. 1개 포대 배치로도 이토록 국론이 분열되고 경제와 민생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한데, 유 의원이 이토록 비이성적인 주장을 하는 데는 정치적 의도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지역구가 대구인 유 의원이 19대 대선 출마에서 지지율 정체의 국면에서 보수 주자로서의 존재감을 보이고 박근혜 이후 보수 대표 자리매김하려는 속셈이다. 유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이자 보수의 본산인 대구에 사드 2~3개 포대를 배치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어 자신의 국가안보에 대한 소신이나 진정성을 입증하기를 바란다.

자유한국당 출신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한 원유철 의원 역시 북한 도발 억제를 위한 ‘핵무장론’과 ‘북한 인권법’의 작동을 강조하며 안보몰이에 집중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파탄의 공동주범으로 민심의 심판을 받고 있으며 당명까지 개정한 자유한국당은 향후 안보위기와 야당 대선주자들의 이념 검증을 집중 제기하며 보수층을 결집하고 박 대통령 탄핵 정국을 돌파할 계획이다.

보수 정치세력의 철지난 ‘안보팔이’와 선거에의 이용은 때가 되면 등장하는 익숙한 장면이지만 현재 가장 주목받는 곳은 국민의당이다. 정당 지지율 답보와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보수 및 중간층을 빼앗기고 있는 국민의당과 안철수 전 대표가 사드배치 반대라는 가장 선명한 입장에서 찬성으로 돌아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피살로 ‘사드배치 반대’ 명분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언제는 김대중 정신, 햇볕정책의 계승 운운하며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사드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라며 압박하더니 하루아침에 이렇듯 변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조선일보와 경제지 등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사드 배치 재검토 등에 대한 야당 대선 주자들의 정당한 공약이나 발언에 대해 터무니없는 흠집을 내며 공격해대고 있다.

정치권과 보수언론이 툭하면 안보를 이용해 ‘북풍’과 ‘색깔론’을 동원하고, 사드 배치 결정과정의 비민주성에 대한 진상 규명이나 국익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천문학적인 예산 낭비와 대중 관계 악화가 우려됨에도 맹목적으로 미국 편들기에 나서는 심보가 고약하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헌재의 최종 탄핵 심판과 조기대선을 코 앞둔 시점에서 또다시 남북문제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불순한 세력의 음모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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