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위치한 서오릉에는 숙종의 명릉과 당시 궁중을 배경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 희빈 장씨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대중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숙종과 여인들의 시대를 서오릉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이채로운 장면이다. 오늘은 숙종의 명릉을 통해 꽃들의 전쟁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숙종의 명릉. 동원이강릉의 형태로 인원왕후의 능역과 숙종과 인형왕후의 능역이 자리하고 있다.

명릉의 제향공간인 정자각

숙종의 승부수, 환국을 통한 왕권의 강화

숙종(재위 1674~1720)은 현종(재위 1659∼1674)과 원비 명성왕후 김씨(1642~1683) 사이에 태어난 적장자로, 조선 왕실에서는 모처럼 원비의 소생으로 태어난 왕자였다. 이 때문에 숙종의 왕위에 대한 정통성과 자신감은 향후 환국정치를 통한 왕권의 강화에 큰 힘이 되었다. 숙종이 열세 살이 되던 해, 현종이 승하하면서 왕으로 즉위한 숙종은 당시 조정의 세력이던 서인과 남인간의 세력을 조절하게 되는데, 이러한 중심에 바로 희빈 장씨로 잘 알려진 장희빈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이상하게 왕실에서는 남자가 귀해지게 되는데, 숙종 대에 이르면 이것이 더욱 심화된다. 숙종의 원비였던 인경왕후(1661~1680)가 세상을 떠난 뒤, 왕후의 자리는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 민씨(1667∼1701)에게 돌아가게 된다. 문제는 숙종과 인현왕후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는 점인데, 원자에 대한 갈망이 심했던 숙종은 때 마침 희빈 장씨(1659~1701)에게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왕자가 태어나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모처럼 왕실에서 왕자를 본 숙종은 기뻐하면서 윤(훗날 경종, 재위 1720∼1724)을 원자로 삼으려고 했는데, 여기에 대해 서인 측이 중전인 인현왕후가 아직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점과 서인의 우두머리 격인 민유중 등이 거세게 반대하자 숙종은 이를 내심 불쾌하게 여기게 된다. 결국 이를 빌미로 남인들이 서인을 공격하는 구실로 작용을 했고, 숙종은 이를 기회로 서인에서 남인세력으로 정치세력을 교체하는 기사환국을 단행하게 된다. 이 환국의 여파로 서인 세력은 급격히 위축이 되고, 그 중심에 있던 인현왕후는 희빈 장씨를 투기했다는 명목으로 폐위되어 궁 밖으로 쫓겨나고 만다. 이후 남인들이 정권을 잡고, 숙종의 뜻대로 왕자 윤은 세자로 책봉하면서, 어머니인 희빈 장씨는 왕후로 책봉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남인들의 정권 역시 오래가지 않아 무너지게 되는데, 이때는 반대로 갑술환국이 일어나 남인 세력이 몰락하고, 서인들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된다. 이 과정에서는 궁 밖으로 쫓겨난 인현왕후가 다시 왕비로 복권이 되고, 희빈 장씨는 다시 빈으로 강등이 되어, 환국정치는 여인들의 운명과 다르지 않게 흘러가게 된다.

명릉의 능침.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역이다.

명릉의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의 모습. 신분질서를 상징하는 상계와 중계의 모습도 확인된다.

궁

배면에서 바라본 인원왕후의 능

인원왕후의 능에서 바라본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역

궐에서 펼쳐진 꽃들의 전쟁

궁 밖에서의 생활에서 건강이 많이 나빠진 인현왕후는 복권이 된지 7년 뒤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를 빌미로 당시 영조의 모친이었던 숙빈 최씨(1670~1718)의 고변에 의해 희빈 장씨는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죄목으로 사사되었다. 이 장면은 많은 사극을 통해 회자된 장면 중 하나이다. 희빈 장씨의 죽음 이후 숙종은 더 이상 후궁이 왕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했는데, 어떻게 보면 희빈 장씨와 대립관계에 있던 숙빈 최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후 숙빈 최씨는 숙종에게 철저히 버림을 받고, 궁 밖으로 쫓겨나게 되고, 심지어 숙빈 최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숙종은 외면을 했다. 이 때문에 숙종의 여인들 가운데 숙빈 최씨의 소령원이 홀로 파주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오릉 경내에 위치한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익릉. 배면에서 바라본 모습

빈 장씨의 대빈묘 전경

숙빈 최씨의 소령원. 숙종의 여인들 가운데 홀로 파주시에 자리하고 있다.

숙종의 여러 치적들, 그리고 서오릉에 남겨진 역사의 이야기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숙종은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청과의 국경 분쟁 가운데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국경선을 안정화시켰다. 또한 숙종 시기에 이르면 상평통보가 확대되어 상업이 활성화 되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내정을 가장 잘 정비했던 시기로 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노산군을 단종으로 추봉하고, 인조에게 억울한 죽음을 맞았던 세자빈 강씨를 민회빈으로 복위시켰으며, 이때까지 공정왕으로 불리던 정종에게 시호를 준 것 역시 숙종이었다. 하지만 정치의 분열을 조장했던 환국정치와 이를 활용하기 위한 도구로 여인들을 이용했던 점은 훗날 숙종에게 비겁하다는 이미지를 덧씌우게 했다. 즉 숙종의 왕권강화는 온전히 그 자신을 위한 것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되는 대목이다. 어쩌면 숙종의 시대야말로 진정한 꽃들의 전쟁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궁궐에서 펼쳐진 여인들과 정치세력의 결합은 그저 숙종에게 왕권강화의 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비정한 느낌마저 드는 것 같다. 그의 시대에 왕권을 강화하는데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역설적이게도 숙종은 왕후에게서는 아들을 보지 못했는데, 숙종이 세상을 떠난 뒤 세자로 책봉된 희빈 장씨의 소생인 경종이 왕위에 올랐다. 이후 병약했던 경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숙빈 최씨의 소생인 연잉군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영조(재위 1724∼1776)였다. 그렇게 숙종을 넘어 또 다른 한 시대가 시작이 되었던 셈이다. 서오릉에 위치한 숙종의 명릉은 동원이강릉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숙종과 인현왕후가 함께 묻힌 능역의 우측 편에 인원왕후의 능역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서오릉의 경내에는 원비인 인경왕후의 익릉을 비롯해 희빈 장씨의 대빈묘가 자리하고 있어 서오릉은 숙종과 그 여인들이 살았던 한 시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장소라고 볼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