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경제 분야에 관한 대통령 후보 TV토론회가 있었다. 지금껏 몇 번의 토론회를 거쳐 오면서 서로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한 대선 후보들은 이전과 같은 전략을 펼치기도 하고 다른 전략을 펼치기도 하면서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특히 심상정 후보는 “홍 후보와 말을 섞지 않으려고 했는데 토론의 룰은 국민들의 권리이고 홍 후보가 너무 악(惡)선동을 해서 (홍 후보와) 토론에 임하려고 한다”고 하며 이전 토론과 달리 홍 후보와 토론을 벌였다. 이에 홍 후보도 “나도 심 후보와 이야기하기 싫다”며 “그렇게 모든 것이 배배 꼬여가지고”라고 말했다. 이렇듯 심 후보와 홍 후보 사이에는 날카로운 신경전이 펼쳐졌다.

그런데 상대후보에게 “배배꼬였다”는 말을 한 홍 후보는 이전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가 “이보세요”라고 하자 “버릇없이”라고 응수했었다. 자신이 들은 “이보세요”는 버릇없는 말이라고 분노하고서 심 후보에게는 “배배꼬였다”고 말하고는 사과 한 마디 없다. 과연 “이보세요”와 “배배꼬였다”중 어느 것이 더 인신 공격적이고 모욕적인 말일까?

문제는 이러한 홍 후보의 태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홍 후보가 “이보세요”에 대해 격분한 일에 대해서는 각 후보의 나이를 찾아 들먹이며 문 후보가 홍 후보다 형이니까 버릇없는 건 아니지만 토론은 공적인 자리므로 적절한 언어는 아니었다는 둥 각 후보의 태도에 대한 대중들의 왈가왈부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에 홍 후보가 심 후보에게 던진 “배배꼬였다”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판이 없다. 특히 언론에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만약 배배꼬였다는 말을 들은 사람이 심 후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지금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지나가진 않았을텐데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 여실이 드러난다.

배배꼬였다는 말을 들은 심 후보는 여성이자 소수정파이다. 우리 사회 사회적 약자들은 이런 막말을 듣고도 아무런 항변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야기는 사적인 경험으로 치부되고 사회 보편적 경험으로 흡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타자인 여성이 노동과 육아를 하면서 겪는 고통은 그녀 개인의 힘들고 고된 인생사일 뿐이지 사회 보편적 경험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니가 그럴 군번이냐?’와 같은 ‘군번’이라는 말이 관용적으로 쓰일 정도로 남성들이 겪는 경험은 사회 보편의 경험이 된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녀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억압 양상이 이번 대선 토론회의 "배배꼬였다"는 막말을 통해 또 한 번 드러났다고 판단된다.

성별, 학벌, 돈, 직업, 외모 등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이 기준에 들어오지 않는 삶을 보지 않고 없는 듯이 취급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생리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가려진 부분에 삶의 진실이 있고 그것을 드러내 바라보는 것이 사회를 좀 더 인간답게 만든다. 그리고 그 가려진 곳에 사는 이가 더 많으면 우리 또한 그곳에 살게 된다. 배배꼬인 그늘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밝은 곳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나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행하는 이에게는 우리 모두 충분히 “이보세요, 어디 버릇없이”라고 이야기 하자.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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