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고려대, 성균관대 교수 및 일선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느림보 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속도가 중요한 요즘 시대에 ‘느림’을 주제로 던진 이유가 뭔지 주정흔 사무국장을 만나 보았다.

“느림보학교는 부모교육 단체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사단법인 느림보 꿈터에요. ‘학교’라는 명칭을 사단법인명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바꾸게 된 거죠. 하지만 구성원들 모두 느림보학교라는 이름이 입에 붙어있고 작은 행사명으로는 느림보학교로 부릅니다. 저희 느림보 학교를 소개하려면 현재 사단법인의 이사와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몇몇 분들이 뭉치게 된 배경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계시는 조기숙 교수님과 지인들이 당신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두고 고민을 나누다가 입시지옥에서 생기를 잃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이나 당시나 어지간한 여건이 되면 자녀들의 미국유학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분위기였는데, 오로지 아이들 교육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한국의 부모를 단지 높은 교육열로만 이해해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었던 거죠. 우리교육의 문제를 파헤치기 시작하는 저서들을 내면서부터 생각을 같이하는 분들이 자연스럽게 뭉치게 되었고,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적 시각에서 벗어나 제3의 시각에서 정치가가 아닌 부모가 스스로 주체가 되어 교육을 바꾸자는 교육운동을 생각하게 된 겁니다. 매월 1회씩 만나 공부를 하면서 2년만인 2012년 <아이를 살리는 교육>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공부의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그간에 너무 정이 들어 이대로 책만 내고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활동이 이어지다 ‘느림보 학교’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느림보 학교 사무국장 주정흔 씨는 교육학자로 오랜 시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왔다. 그녀가 느림보 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우연이라고 했다.

“느림보학교 2기 교장이셨던 곽노현 전교육감님을 뵈었어요. ‘이런 얘기~저런 얘기’ 나누던 끝에 일면식도 없던 제게 함께 일해보자 제안하시더라고요. 느림보학교라는 게 궁금하기도 하고 일단 이름이 마음에 들었어요.”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주 씨의 ‘느림보 학교’ 참여는 그동안 교육학자로서의 활동 연장선에 있는 자연적인 결과기도 하다.

“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하는데 과연 교사의 질만으로 우리의 교육을 바꿀 수 있을까요? 교사의 전문성과 수업개선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에요. 어떤 교육개혁이든 종국에는 회수를 건넌 탱자가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사회가 그런 개혁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의식과 역량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들 부모가 바로 교육개혁의 중심축인 거죠. 이러한 생각으로 느림보 학교에서는 현재 학기별로 연 4회 정도 ‘부모성장교실’을 열고 특정 주제를 정해 시리즈 강의를 진행하고 있고, 봄, 가을 생태문화체험교실과 부모캠프도 진행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삶을 이야기 하고 나누는 것을 즐기며 우리의 삶이 변화되길 희망하는 그녀가 바라보는 개인의 삶은 어떠한 모습일까? 늘 타인의 삶에 관심을 쏟아온 교육자로서가 아닌 개인 주정흔의 삶이 궁금해졌다.

“제 자신을 ‘교육자’라고 강하게 인식해본 적은 없습니다. 가끔 제자들에게서 연락이 오면 ‘내가 선생이었구나’라고 자각하게 되는 정도에요. 남을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힘도 권위도 없습니다. 그냥 같이 걸어가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겠다’라는 목표를 강하게 세우고 살지 않아요. 어느덧 살다보니 이 길 위에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거죠. 장자가 말한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길은 걸어서 만들어진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길이 명확한지 아닌지 굳이 따지기보다 그냥 걷다보니 걸어온 만큼 길이 된 거 같아요. 어떤 일이 되었든 지금 이 순간에 서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걸어가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전공한 학자여서 어떠한 운동을 한다는 사명감으로 ‘느림보 학교’를 하는 게 아니라 걷다 보니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주 씨의 삶의 결이 보드라웠다. 부모교육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원대해 보이는 이상이 이렇게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써 함께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신이 부족한 게 많은 부모이니만큼 부모교육을 한다는 게 매우 부담스러울 때가 많아요. 그래도 세상을 먼저 산 선배 부모로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함께 해 보자는 마음으로 느림보 학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이를 낳게 되면서 ‘어쩌다’ 부모라는 이름을 달고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부모 ‘역할론’에 빠지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이 역할이 쉽지 않고 정답이 없어요. 누구나 부모가 될 수는 있지만 부모 역할은 평생을 두고 풀어가야 할 인간의 길에 관한 수수께끼예요. 그래서 저는 부모 교육을 할 때 평생을 두고 배우고 성찰하는 기쁨을 누리겠다는 기대와 열망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어요. 그게 선배 부모로서 부모교육을 하는 제 마음이에요.”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아이의 주변이 행복해야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부모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나누는 담장 없는 학교인 ‘느림보 학교’는 현재 다음 카페에서 회원들과 온라인 교류를 하고 있다. 자연스레 부모가 되지만 그 역할을 배워 본 적 없어 방황하는 우리 사회 부모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느림보 학교’가 앞으로도 더욱 많은 활동을 해 나가길 응원한다.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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