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군으로 손 꼽히는 세종(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 심씨(1395~1446)의 맏아들인 문종(재위 1450∼1452)은 일찍 요절해 병약한 것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의외로 세종의 후반기는 대리청정의 형태로 실제 국사로 이끌어왔기 때문에 세종의 후반기부터 실질적인 치세가 시작된 것과 다름이 없다. 조선시대에 왕의 자리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격무가 있었던 자리라 이러한 대리청정은 문종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문종이 즉위한 뒤 일찍 병사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세자로 책봉된 이후 문종은 왕으로서의 자질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조선시대 과학 발전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측우기의 발명 역시 문종이 개발했다는 점에서 과학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1418~1441)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단종이 수양대군(재위 1455~1468, 이하 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었기에 문종의 시대는 곧 비극의 역사와 맞물리게 된다. 오늘은 문종의 현릉을 통해 여인을 멀리했던 문종과 단종의 비극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문종의 능침 전경. 상왕으로 물러난 단종이 현릉을 찾은 기록이 있는데, 과연 단종은 문종의 현릉을 찾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인석에서 바라본 모습.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세상을 떠난 문종과 외톨이가 된 단종의 비극

문종은 자신의 병이 깊어짐에 따라 아직 어린 단종에 대한 염려로 고민이 깊어만 갔다.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경우 아직 14살에 불과한 어린 단종이 장성한 숙부들 사이에서 안위를 장담 받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실에서 종종 어린 왕이 즉위할 경우 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단종은 수렴청정을 할 만한 소헌왕후 심씨와 자신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에 문종은 세상을 떠나기 전 김종서와 황보인 등 중신들을 불러,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단종을 잘 보필할 것을 고명으로 남기게 되고, 문종은 1452년 3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에 문종에게 고명을 받았던 고명대신들에 의해 단종이 즉위하게 되고, 아직 어린 단종 대신 고명대신들이 정치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다. 이는 왕권보다 신권이 강해지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장성한 대군들과의 갈등을 빚게 된다. 결국 수양대군이 한명회와 신숙주 등과 함께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등 고명대신과 반대편을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하면서,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나게 되고, 이후 사육신의 복위운동을 빌미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당하는 처지에 몰리게 된다. 결국 금성대군에 의해 또 한 차례 복위운동이 펼쳐짐에 따라 단종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문종의 능침에 자리한 문인석과 석마의 모습

병풍석의 세부모습. 이전과 달리 구름무늬가 두드러진다.

여인을 멀리했던 문종, 3번의 혼인과 폐출의 연속

문종은 세자 시절 총 3번의 혼인을 하게 되는데, 이는 조선왕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특이한 경우였다. 문종의 첫 번째 세자빈은 휘빈 김씨(1427~1429)로 1427년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휘빈 김씨가 세자빈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태종의 후궁이었던 명빈 김씨의 조카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여인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문종과 휘빈 김씨는 성격이 맞지 않아 점차 세자빈의 처소를 멀리하게 된다. 이에 휘빈 김씨는 문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고무신을 태워 가루로 만들고, 뱀이 교합할 때 나오는 물질을 몸에 바르는 일종의 사술을 하다가 들통 나서 1429년 7월 폐출이 되었다.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서 이러한 사술은 문제가 되는 행동이었고, 결국 폐출된 휘빈 김씨를 비롯해 아버지인 김오문과 부인이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세자는 향후 왕이 되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세자빈의 자리는 그리 오래 비워둘 수는 없었다. 이에 전국에 금혼령을 내려 당시 창녕현감인 봉여의 딸을 세자빈으로 책봉하니 이가 순빈 봉씨(1429~1436)였다. 하지만 순빈 봉씨 역시 문종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못했는데, 문종이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인데 반해, 순빈 봉씨의 경우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이 때문에 문종이 세자빈의 처소를 멀리하게 되자, 순빈 봉씨 역시 세자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휘빈 김씨가 했던 실책을 반복하게 된다. 물론 그 사이에 문종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얻게 되지만 어렵게 얻었던 첫째 딸은 이내 세상을 떠나면서 점점 질투심이 폭력적으로 변해갔고, 이는 조선왕실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동성애 사건을 낳게 된다. 당시 순빈 봉씨와 소쌍의 동성애는 조선왕실을 발칵 뒤집어 놓게 되고, 이는 용납이 될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두 번의 세자빈 폐출이라는 정치적 부담감을 무릅쓰고 1436년 10월 폐출이 결정되어 순빈 봉씨 역시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자결을 해야 했다. 두 차례에 걸친 세자빈의 폐출로 당시 세종은 깊은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이에 대신들을 불러 논의를 하면서 다시 간택을 통해 정치적인 부담감을 안기 보다는 기존에 있던 후궁 가운데 세자빈으로 올리는 방안을 고민하게 되고, 세종이 여기에 대해 승인을 하면서 1436년 12월 세자궁에 승휘로 있던 훗날 현덕왕후가 되는 권씨를 세자빈으로 세우게 된다. 이후 이 혼인이 문종에게는 마지막 혼인이 되었고, 세자와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세자빈 권씨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낳게 되니, 단종과 경화공주였다. 하지만 세자빈 권씨는 단종을 낳은 지 3일 만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결국 세 번의 혼인에서 여인들이 모두 문종의 사랑을 받기를 원했지만, 이러한 여인들의 사랑에 무심했던 문종의 애매모호한 입장은 결국 두 번의 폐출을 부르게 되었기에, 이러한 사실에 대해 문종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현덕왕후 권씨의 능침 전경

현덕왕후 권씨의 능침에서 바라본 문종의 능침

폐위 되었던 현덕왕후 권씨, 현릉에 안장이 되다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현릉은 현재 동구릉 내 자리하고 있는데, Y자 형태의 동원이강릉으로 조성이 되어 있다. 현덕왕후 권씨는 문종이 즉위한 뒤 왕후로 추존이 되어 소릉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훗날 단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세조는 단종의 어머니였던 현덕왕후 권씨에 대한 폐위를 결정하게 되고, 종묘의 신주가 철거가 되었다. 이후 중종 대에 이르러 종묘에 벼락이 친 사건을 계기로 현덕왕후에 대한 추복이 결정이 되어 현재의 위치인 현릉에 안장이 되었다.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현릉은 조선 전기의 왕릉의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능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자리한 문종의 능침은 전례에 따른 왕릉의 기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우선 병풍석의 경우 훼손되지 않고 잘 남아있는데, 여기에는 이전 왕릉에 비해 구름무늬가 두드러진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문인석과 무인석 역시 크고 위엄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복위가 결정된 뒤 조성된 현덕왕후 권씨의 능침은 능의 주위로 난간석을 둘렀으며, 문인석과 무인석 등 왕릉의 예를 따라 조성이 되었다. 원래 세자빈 때 세상을 떠났지만 문종 때 왕후로 추존이 된데다, 이후 소릉이 파헤쳐짐에 따라 새롭게 안장을 할 때는 능침을 새롭게 조성해야 했기에 왕릉의 예를 따라 조성이 된 까닭이다. 여인에게 무관심했던 것을 제외한다면 문종은 현명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한편 명과의 관계도 잘 이끌어가는 등 무난한 정국을 이끌어갔던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난 결과 단종의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데, 만약 조금 더 오래 살아서 단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거나, 혹은 계비를 들여 단종의 지지세력을 만들어두었다면 어쩌면 우리가 아는 역사와는 다른 전개가 펼쳐졌을 가능성이 높다.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단종은 현명한 왕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세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상왕으로 물러난 뒤 아버지의 현릉을 자주 찾았던 단종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아버지의 능을 찾았던 단종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게 그리고 말없이 그 시대를 증언하고 있는 현릉은 많은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 할 만하다.

김희태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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