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아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내려 그 자리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인도 위였고 화단 옆에 서 있던 아이가 울어서 가보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자전거에 타고 있고 아이는 쓰러져 있다. 자전거에 치인 거다. 다행히 빠른 속도가 아니었고 아이도 무탈해서 지나갔지만 정말 많이 놀랐다. 그리고 왜 인도 위로 자전거가 다니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달 후 단지 내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주민 한 분이 잠시 갇히는 사고가 일어났다. 우리 아파트는 다른 곳과 달리 주민자치모임이 있어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정보도 교류하는 단체 채팅과 오프라인 모임이 있다. 그곳에서 엘리베이터 사고와 같은 여러 가지 아파트 내 안전사고 관련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생각보다 실제 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안전문제가 있었다. 이때 지난 자전거 사고를 예로 들며 인도 위 자전거 이용 자제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었다. 그런데 다른 주민이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어서 어쩔 수 없다면서 집에 있는 자전거 잘 이용하자는 채팅을 올렸다.

이후 월 1회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주민자치모임 이야기장에 이 안전문제가 주제로 상정되었다. 평소 참여하지 않았던 이곳에 자전거 인도 위 이용 반대를 직접 말하기 위해 참석했다. 350명이 온라인에서 채팅을 했지만 실제 오프라인에 참석한 인원은 10명 정도였다. 대부분 주민자치위원회 정회원들로 의견 개진을 위해 새로이 참석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평소 주민들 의견을 많이 듣던 분들이라 온라인에서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전거 문제도 단지 내 자동차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니기 때문에 부모들이 도로 위에서 타라고 하기 꺼려진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좀 더 이해가 됐다. 결국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선 단지 내 자동차 서행이 우선돼야 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이를 위해 도로에 20킬로 제한 표시를 하자는 구체적 해결방안도 나왔다.

아파트는 공동생활 공간으로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산다. 대중 속에 숨어 살기에 편하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땐 나에게 오는 영향이 매우 직접적이다.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그럼으로써 상대를 이해하고 보다 나은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선 소통의 장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아파트에는 주민자치 모임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온라인 단체 채팅에서 자신의 의견만 개진하고 숨어 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아쉽다.

이번 문재인 정부는 지난 시간 광화문 인수위원회를 통해 국민들의 의견을 직접 들었다. 평소 정부에게 하고 싶은 정책 제안이나 불편함 등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많은 국민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아이들 교육이나 육아 관련 의견이 적어 놀랐다는 인수위원의 의견이 있었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돌보느라 의견 개진을 위해 컴퓨터를 켤 여력이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접수 되지 않는 의견은 현안에서 밀려나게 된다는 인수위원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컴퓨터를 켰던 기억이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안전 문제도 그렇고 인수위원회도 그렇고 무엇이든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지난 촛불의 힘은 ‘나 대신 누군가’가 아닌 ‘나 아니면 안돼’라는 주인의식이 이뤄낸 결과이다. 이러한 생각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계속 이어져 내가 사는 아파트부터 바꾸고 결국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길 바란다.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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