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달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여전히 거실의 달력은 8월이다. 아차, 달력을 뜯어야겠구나. 달력을 뜯으니 비로소 9월이 시작된 것 같다. 그런데 달력의 그림이 꽤나 예쁘다. 국민은행에서 준 달력이었는데, 제주의 풍경을 일러스트로 그린 것이다. 그동안 왜 나는 8월달 동안 달력의 그림을 보지 못했을까? 날짜를 보려고 힐끗힐끗 쳐다본 것 같은데 달력 그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일 봤지만 보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 작성에 관한 강의를 하고, 개별적으로 학생들의 글을 봐준 적 있다. 그런데 한 여학생이 자기소개서 항목 중 쓰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한다. 기업체가 요구하는 자기소개서 항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내용별로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항목 한 가지는 ‘당신이 시도했는데 성공한 일, 혹은 실패한 일 그것을 통해 배운 바를 기술하시오’ 이다. 시도했는데 성공하거나 실패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된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제가 시도해서 성공한 것은 몇 몇 있는 것 같은데, 실패는 그다지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혹시 어려움을 겪은 일이 없었냐’고 물었더니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위기나 어려움, 실패나 난관 등을 어떻게 극복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은 바로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패에 대한 대처방법이 기업 내에서도 일의 성패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물 서너 살의 학생들이 과연 인생의 큰 실패가 있을까 싶다. 대다수가 별다른 고난 없이 살아간다. 가장 많이 작성하는 사례가 ‘학과에서 팀별로 과제를 할 때 힘들었던 경우’를 이야기한다. 아르바이트 하면서 혹은 해외여행을 하면서 있었던 난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실패나 고난 등을 이야기할 거리가 별로 없다.

그렇지만 질문의 폭을 좀 더 줄여 보면 ‘실패’에 대한 다른 접근을 할 수 있다.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실패가 아니다. 거창한 도전을 해서 실패한 일이 아니어도 좋다.

‘혹시 하고 싶어서 시도해 보았는데 그만두거나 안 맞았던 분야는 없나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는데 제가 스스로 선택해서 가겠다고 한 거였어요. 그런데 5-6년 연습하고, 배웠지만 결국 그만뒀어요. 나중에는 재능이 없었던 것 같아요”라고 한다. 이러한 스토리는 평범할 수 있다. 곧이어 ‘이 사건을 되돌아볼 때 본인에게 어떠한 능력이 키워진 것 같나요?’라고 물었다.

“아하! 어쨌든 제가 좋아하는 것을 시도해 보는 거요. 선택은 했지만 결과가 항상 좋을 수는 없다는 것, 배우고자 하는 열망, 5년간 지속했던 끈기 등이 있네요. 거기다가 음악적 재능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바로 그렇다.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와 매일 같이 살면서도 어떤 모습이 내재되어 있는지 안 보인다. 항상 보면서도 보이지 않는 아이러니함이 바로 나 자신이다. 잘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볼 때 비로소 자신이 보인다. 나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모두 그러하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