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사실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올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쳤을까?’라는 생각부터 든다. 보통 칭찬거리나 잘 했다는 이유로 굳이 수업 시간 중에 전화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잦게는 한 달에 2-3번이었고, 고학년 들어서는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큰 사건으로 전화가 온다. 그런데 6학년이 되어 이번 달에만 두 번째다. 지난 번에는 옆 반 친구와 문 열고 닫기 장난을 하다가 상대방 아이가 다리를 다쳤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종류의 장난이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내 아이가 상대방 친구의 바지를 벗겼다는 것이 싸움의 시작이다. 6학년 남자 아이끼리 흔히 장난할 수 있는 놀이지만 요즘에는 민감한 사항이 된다. 다른 사람의 옷을 벗기고 놀림거리로 만드는 것을 통해 타인에게는 심각한 상처가 될 수 있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장난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전화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바로 20 분 전 쯤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S(상대아이)가 복도에서 걸어가는데, J(내 아들)는 장난을 하면서 바지를 벗겼어요. 흘러내렸는데 물론 중요한 부위가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창피하고 기분 나빴나 봐요. 요즘에는 몸에 대한 터치나 놀림이 민감한 주제가 됩니다. 그러다가 서로 발로 차고 몸싸움까지 벌어졌습니다. 싸우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S의 안경이 깨졌습니다. 서로 사과하고, 화해했지만 안경 값은 변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말씀하신다. 누군가 갑자기 나의 바지를 벗기는 행동을 한다면? 사실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이러한 행동을 하는 걸까. 가끔 아이의 ‘뇌구조’가 궁금하다. 곧바로 S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선 무조건 이럴 때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전화를 받은 S의 엄마에게 곧바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사과하고, 배상을 해야 할 문제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 내 맘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끔씩 화가 난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나?’라고 말이다. “너의 문제니,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내버려 두고 싶다. 자식과 부모는 악연인가 아니면 필연인가 모르겠다. 직장 다니거나 사회생활 하는 것은 언제든 내 의지로 관둘 수 있다. 그렇지만 부모 되는 것은 이미 결정된 이상 번복할 수도 없고, 후퇴할 수도 없다. 끝낼 수 없는 일이다. 내 인생 끝날 때까지 안고 가야 할 숙제와 같은 일이 된다.

나는 엄마가 되면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적이 많다. 태어나서 서른이 될 때까지는 내가 해 왔던 일과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공부를 잘 하는 것, 상을 받는 것, 일로써 결과를 얻은 것 등은 모두 나의 노력 여하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는 나의 모든 평가가 아이로부터 비롯된다. 벗어나기 힘든 숙명처럼 말이다.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순간 평가의 기준이 뒤바뀐다. 지금껏 내가 해왔던 일과 학업은 무시된다. 자식이 엄마의 성적표가 되어 버리는 일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