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중 광해군의 어머니인 공빈 김 씨(1553~1577)의 ‘성묘’가 있다. ‘광해군 묘’와 마찬가지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광해군 묘’에서 ‘성묘’까지는 불과 1km 남짓 떨어져 있는 셈이다. ‘성묘’를 찾아가는 길은 간단하지가 않다. 초행길에는 이정표 자체도 찾기가 어렵고 일반적인 도로가 아닌 민가의 내부를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이정표를 따라 오르다 보면 풍양 조 씨의 시조이자 고려의 개국공신이었던 조맹의 신도비와 마주하게 된다. 이 신도비 옆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조맹의 묘를 만날 수 있는데, 조맹의 묘 바로 뒤에 ‘성묘’가 자리하고 있다. ‘성묘’는 꽤나 낯선 존재이지만, 의외로 공빈 김 씨는 대중매체를 통해 익숙한 인물로, 선조(재위 1567~1608)의 궁인으로 출발했던 공빈 김 씨는 장남인 임해군(1574~1609)과 차남인 광해군(재위 1608~1623)을 낳고, 공빈으로 책봉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광해군을 낳은 지 2년 뒤에 세상을 떠나면서 임해군과 광해군은 지지 세력이 없는 외톨이 상태로 궁궐에 남게 된다. 이 때문에 드라마 ‘허준’에서는 공빈 김 씨가 허준에게 두 아들을 부탁하는 장면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장면 자체는 허구이지만, 당시의 임해군과 광해군의 입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이다.

풍양 조 씨의 시조인 조맹의 묘에서 바라본 ‘성묘’의 전경

공빈 김 씨의 ‘성묘’의 전면 모습

봉분 앞에 세워진 장명등

왕의 어머니가 되었던 공빈 김 씨, ‘성릉’으로 추숭되다.

공빈 김 씨가 세상을 떠난 뒤 현 위치에 ‘성묘’라는 이름으로 조성이 되었는데, 이때까지는 ‘성묘’는 일반적인 후궁의 묘역이었다. 이후 ‘성묘’가 그 격을 달리해 왕릉으로 변화하게 된 것은 아들인 광해군의 세자 책봉과 왕의 즉위와 관련이 있다. 운명의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임진왜란(1592년)이 벌어진 뒤 국가의 안위를 위해 다급히 세자로 책봉을 하게 되는데, 당시 장남인 임해군은 성정이 포악한 관계로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이 되고, 또 하나의 조정인 분조를 이끌고 전란을 수습하면서 신망을 얻게 된다. 당시 선조와 정비인 의인왕후 박 씨(1555~1600)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광해군의 이러한 공적은 세자로서의 지위를 다지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고, 의인왕후 박 씨 역시 광해군을 지지해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의인왕후 박 씨가 세상을 떠난 뒤, 새로 선조의 계비로 들어온 인목왕후 김 씨(1584~1632)와의 사이에서 영창대군이 태어나면서 상황이 묘하게 변하게 된다. 더욱이 임진왜란 중 급하게 세자로 책봉한 것이라 이때까지도 아직 명나라의 승인이 없었다는 점은 영창대군을 지지했던 서인들에게 좋은 명분을 제공해주었다. 선조 역시 최초의 방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내심 영창대군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실제로 이 시기가 되면 선조는 광해군의 문안마저 거절하면서 선조와 광해군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후 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우여곡절 끝에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는 영창대군이 아직 어린 데다 이미 세자로서의 지위를 굳히고, 실력이 검증된 광해군을 대체할 수 없었던 측면이라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의 어머니인 공빈 김 씨를 공성왕후로 추숭하고, 그 묘호 역시 ‘성릉’으로 높이게 되는데, 이때부터 ‘성묘’는 ‘성릉’으로 불리게 되었다.

봉분에 설치된 난간석. 후에 가설한 까닭에 그 규모는 작은 편이다.

난간석의 안쪽 모습. 봉분이 둘레돌로 조성되어 있다.

‘성묘’의 혼유석. 통상 일반 묘의 경우 묘표와 함께 상석이 설치가 되어 제사가 이루어지지만, 왕릉의 경우 별도의 정자각이라는 제향 공간이 있기 때문에 혼유석이 설치가 된다. ‘성묘’가 한때 왕릉이었음을 알 수 있는 석물이다.

‘송능리’의 지명에 남아있는 ‘성릉’, 광해군의 폐위와 함께 ‘성묘’로 환원되다.

‘성릉’으로 그 격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묘역에 대한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우선 왕릉의 예에 따라 석물들이 만들어져 가설이 되었다. 봉분에는 새롭게 난간석을 설치하고, 이미 설치된 곡장 안으로 석양과 석호 각 2쌍을 세웠다. 통상 묘에서는 봉분 앞에 묘표와 상석이 설치된데 비해 ‘성묘’의 경우 왕릉의 예에 따라 혼유석과 고석이 설치가 되고, 중앙에는 장명등이 설치가 되었다. 묘의 좌우에는 망주석 1쌍과 문인석과 무인석 각 1쌍, 석마 2쌍이 자리하고 있고, 신분 질서를 알 수 있는 상계와 중계 역시 장대석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따라서 ‘성묘’는 묘역이지만, 조선왕릉의 형태를 하고 있는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 씨의 ‘회묘’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묘’ 자체가 워낙 좁은 묘역이라 후대에 가설된 석물들이 비집고 들어간 느낌을 받게 된다. 아울러 ‘성묘’의 본래 모습은 인근에 위치한 ‘임해군 묘’와 유사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봉분 아래 둘레돌로 조성된 모습은 현재 ‘성묘’와도 유사하다. 통상 이러한 형태의 봉분은 김포 장릉 등 추존된 왕릉에서 일부 확인이 되고 있다.

‘성묘’의 무인석. 무인석은 오직 왕릉에서만 설치가 되었다.

배면에서 바라본 ‘성묘’의 모습

‘성묘’의 인근에 자리한 ‘임해군의 묘’. 공빈 김 씨의 장남이다.

한편 ‘성묘’가 ‘성릉’으로 변화하면서, ‘성묘’의 앞에 자리하고 있던 풍양 조 씨의 시조인 조맹의 묘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게 된다. 통상 왕릉이 조성되면 왕릉의 주변에 위치한 민가나 묘는 철거 혹은 이장을 하게 되는데, 조맹의 묘 역시 이장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게 되고 그 결과 봉분을 평평하게 하는 정도에서 마무리가 된다. 당시 이러한 ‘성릉’의 변화된 모습은 백성들에게 인상적인 모습으로 남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지명인 ‘송능리’에 고스란히 남게 된다. ‘송능리’는 1914년 송정리의 송(松)과 ‘성능리’의 능(陵)을 따서 새롭게 만들어진 지명으로, 그 이전까지는 ‘성능리’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광해군의 폐위와 함께 ‘성릉’은 다시 ‘성묘’로 환원이 되면서, 왕릉의 격에 맞게 설치되었을 정자각을 비롯한 비석 등은 철거를 피할 수가 없었다. 인조실록에는 ‘성묘’에 어울리지 않는 석물에 대한 철거 명령이 나오고 있어 당시 능침이었을 묘역을 제외한 제향 공간과 비석, 홍살문 등은 모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성묘’의 주인공인 공빈 김 씨는 죽어서나마 두 아들과 가까운 곳에 묻히게 되는데, 우선 제주도에서 세상을 떠난 광해군은 마지막 유언으로 어머니의 발치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게 되고, 164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게 된다. 또한 장남인 ‘임해군 묘’ 역시 ‘성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죽은 뒤에도 가족이 함께 모여 있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성묘’를 통해 ‘송능리’의 지명과 한때 왕릉이었던 ‘성릉’과 관련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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