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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화성, 수원 편 - 오산 궐리사(闕里祠)의 이름에 숨은 뜻이 있다?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8.02.05 22:55

오산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명소로 독산성과 함께 오산 궐리사(闕里祠)가 있다. 특이한 것은 궐리사와 관련한 이름으로, ‘궐리(闕里)’는 공자가 태어난 중국 산둥성 곡부(曲阜)를 뜻하고 있다. 또한 한자로 ‘사(祠)’는 사당을 뜻하고 있기에, 궐리사가 공자의 사당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궐리사에 대한 기록은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의 사원 편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지평에 있던 궐리사를 정조가 재위하던 계축년(1792)에 옮겨지었다는 것과 정조가 친필로 ‘어필(御筆)’의 ‘액판(額板)’을 내렸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궐리사에 공자의 영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논산에 자리한 노성 궐리사와 함께 두 곳만 남아있는 오산 궐리사는 본래 공자의 후손인 공서린(1483~1541)이 낙향하여 서재를 짓고 강학을 했던 공간으로, 이후 공자의 사당으로 성격이 변화했던 건물이다.

오산 궐리사의 입구. 홍살문과 함께 하마비가 자리하고 있다.
궐리사의 하마비. 궐리사가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이다.

■ 오산시 궐동의 지명 유래가 되었던 궐리사

과거 지명 중에 특징적인 것이 있으면 지명에 영향을 미친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가령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의 경우 정순왕후 송씨의 사릉이 자리하고 있어 지명의 유래에 영향을 미쳤으며, 오산시 궐동의 지명 유래 역시 궐리사가 있었기에 ‘궐동’이라는 지명이 붙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궐동의 인근에 곡부 공씨가 많은 것도 궐리사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당시 정조가 궐리사를 조성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친필 사액(賜額)을 직접 내린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또한 공자의 영정을 ‘성묘’에 안치하게 했는데, 당시 조선에 공자의 진본 영정이 하나 밖에 없었는데, 그곳이 궐리사였다는 사실은 궐리사를 바라보는 정조의 관심이 남달랐다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 정조가 궐리사에 보인 관심은 유학을 장려하고자 했던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당시 유행하던 ‘패관문학’에 대해 정조는 잡스러운 것이라 하여 금지를 시키고, 더욱 유학에 대해 장려하고자 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을묘년(1795)의 원행으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으로 내려온 정조의 공식적인 첫 번째 행사가 바로 수원향교의 대성전을 전배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조는 유학의 발전상을 수원에서 찾고자 했던 측면에서 궐리사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다.

공자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성묘’
강학 공간으로 활용된 ‘행단’의 전경

■ ‘동학서묘(東學西廟)’로 배치된 오산 궐리사, 서원의 건축 방식과 유사하다.

오산 궐리사를 처음 접하게 되면 공자의 사당이지만, 동시에 서원의 건축 방식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통 조선 후기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로, 쉽게 설명하면 앞쪽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明倫堂)’이 자리하고, 그 뒤에 제향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이 위치한 구조다. 반면 오산 궐리사의 경우 ‘동학서묘(東學西廟)’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전학후묘’와 달리 제향 공간인 ‘성묘’와 강학 공간이 ‘행단’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방식이다. 궐리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건물은 단연 공자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건물인 ‘성묘’로, 향교로 치면 대성전의 기능을 한다. 이러한 오산 궐리사는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공서린이 낙향하여 서재를 짓고 후학들을 가르치는 한편 은행나무를 심었다.
공자의 석상. 곡부가 위치한 중국 산둥성에서 기증했다.

성묘의 우측에는 곡부가 위치한 중국 산둥성에서 기증한 공자의 석상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좌우로 5성위의 성현이 배치되어 있으며, 강학 공간인 ‘행단’의 경우 향교의 명륜당 역할을 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1871)에 따라 궐리사 역시 훼철을 피하지 못했는데, 1900년에 이르러 다시 궐리사를 세우고 지금까지 건물들을 중수한 결과 현재의 궐리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궐리사의 입구에는 이곳이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는 하마비를 볼 수 있으며, 마당에는 공서린이 심은 은행나무와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한편 또 하나의 주목해볼 문화재가 있는데, 바로 궐리사 성적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로 공자의 생애를 그림과 글로 목판에 새긴 것이다. 궐리사 내 ‘공자문화전시관’에서 볼 수 있으니, 가는 길에 함께 보면 좋다. 의외로 궐리사를 통해 궐동의 지명 유래가 되었다는 사실과 정조가 궐리사에 보인 관심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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