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현장에 있으면서 지역주민과 복지 전공자들을 만날 때마다 질문하는 것이 있다. “노인이라는 말에 우리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평소에 생각했던 것도 좋고,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도 좋다. 이에 대한 답변들을 정리해보면 의견이 한쪽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거, 지팡이, 외로움, 빈곤, 자살, 도시락, 보수, 고집, 질병이라는 단어가 단골로 나온다. 노인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이것만은 아닐 것이지만 좀처럼 좋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은연 중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같은 질문을 당사자인 노인에게도 해봤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다. 노인들조차 스스로가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늙은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전공필수와 전공선택을 보면 대상을 규정한 과목들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약자에 대한 존재가 더욱 분명해진다. 노인복지론을 비롯하여 장애인복지론, 아동복지론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사회적 약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인식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 우리와 같은 이웃이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가 구분되어 있다.

다시 질문한다. 이제는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국한해 본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았던 것에 대해 답변한다. 지혜, 인자, 따뜻함, 맛있는 음식, 활기찬 등이다. 노인들에게는 긍정적인 요소도 충분하게 있다.

부정적인 노인의 이미지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뿐이지만 긍정적인 노인의 이미지에서는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노인은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한평생 살아온 경험으로 인해 축적된 정보는 상당하다. 책을 통해 접했다거나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거나 직접 경험해서 만들어진 정보다. 수많은 정보의 집합체가 바로 노인이다. 그래서 노인을 도서관이라고 한다.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이 사라진 것과 같다. 예컨대 공장에서 만들고 있는 된장도 맛은 있지만 할머니의 손으로 만들어진 고유의 맛을 따라 가진 못한다. 그 노인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자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능력이다. 이 노인이 사라지면 이 능력도 사라진다.

‘노마지지’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늙은 말이 슬기롭게 간다’는 말이다. 한비자의 설림편에 나오는 이 말은 춘추전국시대의 전쟁을 무대로 한다. 당시 전쟁을 하러 갔으나 전쟁이 길어지고 겨울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추운 날이 오래되어 지름길을 찾아 고국으로 빨리 돌아오다가 길을 잃고 만다. 오고 가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태에서 한 장수가 늙은 말을 풀어 놓는다. 이 말은 전쟁의 경험이 오래되어 돌아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군대는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늙은 말이 없었다면 군대는 모두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동사했을지도 모른다. 노인의 경험과 지혜가 중요한 이유다.

이처럼 우리가 노인을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하는지에 따라 노인을 대하는 태도를 다르게 만든다. 단지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인식할 때 우리는 늘 노인을 도울 수밖에 없다. 노인이라는 존재를 결국 부담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노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 노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 노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들의 지혜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노인은 Know인이다. 사람을 아주 잘 안다.

이건일(태평2동복지회관 관장)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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