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이 또다시 자살할 위험은 일반인의 8.3배에 이른다고 한다. 거기다가 우울증을 앓을 확률은 7배에 달한다. 누구보다 큰 자살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정부의 자살예방대책의 해당사항은 아니다. 최근 10년간 국내에서 13만8000여명이 목숨을 끊었다. 이로 인해 매년 8만명, 10년간 최소 70만명의 자살 유가족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또다시 커다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며 집에 틀어박히거나 우울증·자살 등의 2차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충북 증평군의 한 아파트에서 여성이 세 살배기 딸과 숨진 지 2개월여 만에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정모(41·여)씨는 정신적인 충격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남편이 먼저 떠나고 혼자 살기 너무 힘들다’고 고통을 표현했다. 전업주부로 살던 정씨는 당장 생활비에 쪼들렸다. 같은 달 어머니가 지병으로 숨지면서 정신적인 충격도 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는 자살 유가족 지원체계가 전혀 없다. 유가족이 적극적으로 도움 청할 곳을 찾아 직접 요청하지 않는 이상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자살사건이 접수 되더라도 정신건강복지센터에는 통보되지 않는다. 당연히 정씨 모녀를 누구도 알지 못했다. 상담으로 연결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던 걸까.

남편의 사망 사건 조사 때 경찰에게 여러 번 호소했다고 한다. 아이랑 둘이 살아갈 방법이 막막하다고 하였지만 경찰은 위로 이상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남편과 함께 갚아나가던 수천만 원의 채무를 혼자 떠안으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도 자살 유가족을 도울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살 유가족을 인터뷰한 결과 43.1%가 진지하게 자살을 고려했고, 29.2%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의 고통 완화를 위한 지원은 자조 모임과 심리 치료비·심리 부검 지원 등이 전부다. 소득이 제로인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취약계층으로 전락하는 자살 유가족을 돕는 긴급지원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증평 모녀사망사건은 지난 2014년 발생한 서울 송파 세모녀 자살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 당시 서울 송파구의 지하에서 살던 60대 노모와 두 딸이 생활고 끝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며 현금 70만원을 넣은 봉투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세모녀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구축한 사회보장체계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을 개정한 맞춤형 급여 제도를 2015년 7월 시행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A씨 모녀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안타까운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다시 한 번 재점검해야 한다. 복지 분야에 해마다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되고 있지만 여전히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이 왜 생기는 지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복지대상자 선정이 까다로워서 이런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 이웃에게 규정과 조건을 따지기에 앞서 먼저 손을 내밀어 그들을 수렁에서 건져내 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제도와 규정 탓만 하다보면 제2, 제3의 증평모녀 사망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긴급지원시스템을 만들어 도움을 주고 난 뒤 절차와 규정 등을 따져 그 사람에게 맞는 복지수혜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제도 개선과 함께 경제적으로 긴급한 상황에 처한 이웃들에 대한 지역사회의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다. 증평모녀 사망사건 당시 모녀가 살던 아파트 우편함에 쌓인 카드연체료와 각종 공과금 체납고지서 등은 위기가정임을 알리는 사인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세심하게 주변에서 살폈더라면 경제위기가정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본의 경우는 자살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유가족에게 상담 전화번호와 유가족을 위한 지원 내용 등을 담은 팸플릿을 전달한다. 이와 함께 자살 유가족들에게 생활고나 우울증으로 인해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을 연계해 준다고 한다. 채무에 대한 법률 자문, 일자리 안내, 긴급생계지원, 심리 상담 등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곳까지 연결한다. 자살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남겨진 가족들이 자살로 또다시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의 안전망이 촘촘해져야 한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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