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수원에 이사 왔을 때 화성행궁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 아직 화성행궁의 광장이 만들어지기 전 광장에는 우체국 건물이 남아있어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랬던 화성행궁의 모습이 몰라보게 달라졌고, 행궁의 광장은 문화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으니 이 역시도 내 기억 속 수원 화성의 모습으로 남겨질 것 같다. 현재 화성행궁은 신풍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객사 ‘우화관’의 복원에 속도를 내고 있어, 머지않아 화성행궁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은 이러한 의미에서 ‘팔폭병풍’으로 잘 알려진 <화성행행도> 속 화성행궁의 모습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 행궁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화성행궁

보통 행궁이라고 하면 왕이 도읍인 한양을 벗어날 때 머무는 곳을 말하는데, 왕조 시대에 왕이 도읍을 비운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았다. 이처럼 왕이 머물렀던 행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이 되는데, 우선 영화 <남한산성>의 예에서 볼 수 있듯 타국의 침략이나 내란이 발생한 경우 이를 피해 이동했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남한산성의 행궁을 들 수 있다.

서장대에서 바라본 화성행궁의 모습

‘서장대야조도’ 속 화성행궁의 모습. 수원화성박물관 복제품 촬영

두 번째로 휴양의 목적으로 조성된 온양행궁의 사례를 들 수 있는데,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역시 온양으로 휴양을 떠난 바 있고, 이후 왕위에 오른 정조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곳에 ‘영괴대(靈槐臺)’를 세우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화성행궁의 예처럼 선대왕의 능행을 위해 머물렀던 사례 등을 통해 행궁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행궁 가운데 화성행궁은 많은 행궁들 가운데 가장 큰 576칸으로, 당시 정조가 수원 화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융릉의 전경. 원행길에 나선 정조가 수원 화성에 행차해서 머문 공간이 화성행궁이다.

또한 한양을 제외하면 왕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 정조의 원행길 행차는 당시 하나의 축제요, 지방 사람들이 왕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희귀한 사례였다. 이처럼 을묘년(1795)에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원행길을 나섰는데, 이때의 행렬과 일정을 기록한 것이 바로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행행도>다.

■ <화성행행도> 속 화성행궁의 모습

‘팔폭병풍’으로 잘 알려진 <화성행행도>에 화성행궁과 관련한 그림이 제법 남아 있는데, 그림 속 현장과 현재의 모습을 함께 비교할 수 있다. 우선 화성행궁의 전체 모습은 ‘서장대야조도’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정조가 서장대에 올라 야간훈련을 지휘하는 그림으로, 서장대의 아래로 화성행궁의 전체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당시만 해도 화성행궁만 있고, 지금처럼 화령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정조의 어진이 봉안된 화령전은 순조 때에 세워졌기 때문에 그림과 현재의 모습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낙남헌의 전경. 화성행궁의 건물 중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낙남헌방방도’ 속 낙남헌의 모습. 수원화성박물관 복제품 촬영

또한 화성행궁의 건물 중 ‘낙남헌’은 일종의 광장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넓은 대청마루가 인상적인 낙남헌 앞에서는 여러 행사가 열리곤 했는데, ‘득중정어사도’를 보면 낙남헌의 앞쪽에서 불꽃놀이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속에는 불꽃놀이를 중심으로 백성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축제를 즐기는 장면이 그려져 있어, 축제 속 한 장면을 상징하고 있다.

‘득중정어사도’ 속 불꽃놀이를 중심으로 축제를 즐기는 백성들의 모습. 수원화성박물관 복제품 촬영

한편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건물이 훼손된 화성행궁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낙남헌’을 배경으로 여러 행사가 열렸다. 화성행행도 속에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홍패와 어사화, 어사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낙남헌방방도’를 비롯해 수원부의 노인들을 초대해 식사와 함께 지팡이와 비단 1필을 하사한 ‘낙남헌양로연도’를 통해 당시의 행사를 짐작할 수 있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진찬연이 열린 봉수당의 모습

‘봉수당진찬도’ 속 봉수당의 모습. 수원화성박물관 복제품 촬영

또한 당시 원행길의 중요한 행사였던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봉수당에서 열렸는데, <화성행행도> 속 ‘봉수당진찬도’에 그날의 행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처럼 <화성행행도>는 지금으로 치면 기록 영상 혹은 사진과 유사하기 때문에, <화성행행도> 속의 역사적인 현장과 의미를 이해한다면 화성행궁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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