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의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가 어려운데, 보통은 서구의 선교사들이 파견되어 전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서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으로 자생적 형성이 된 경우였다. 이에 따라 조선 후기에 천주교에 우호적이었던 ‘남인’과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천주교는 급속히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주교는 유교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전주 전동성당. 윤지충과 권상연 등 부모의 위패를 불태운 진산사건은 뜻하지 않게 ‘신유박해’의 빌미를 작용했다.

1791년 진산에 살던 윤지충과 권상연 등이 부모의 위패를 불태운 이른바 ‘진산사건’이 발생하면서 천주교는 정치적인 문제로 확대되었다. 당시 조정에서 서인들이 남인들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했고, 이때 정약용과 그 형제들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와 처형을 피하지 못했고, ‘신유박해(1801)’의 시기를 맞이했다. 이어 ‘기해박해(1839)’를 비롯해, ‘병오박해(1846)’, ‘병인박해(1866)’ 등 4차례에 걸친 박해가 이어지면서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문경 여우목성지에 세워진 이윤일의 흉상

이처럼 박해를 통해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를 했기에, 지난 1984년 한국교회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03위 성인에 대한 시성을 주관했다. 또한 지난 2014년 8월에 방한한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윤지충을 비롯한 123위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이 진행되었는데, 통상적으로 시복이 이루어진 뒤 성인에 오르는 시성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천주교의 역사가 있기에 지금도 전국적으로 성인 혹은 복자들과 관련이 있는 성지들이 많이 남아 있고, 천주교의 신자들에게는 성지순례의 장소가 되고 있다. 또한 각각의 성지에 담긴 의미도 작지 않기에, 이러한 성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분명 우리 역사의 한 장면으로 의미가 있다.

■ 용인시 이동면 묵리에 있는 한 성인의 묘터, 용인과 문경, 대구를 이어주다.

용인시 이동면에 있는 원천 교차로 오거리에서 묵리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우측으로 용덕 저수지를 만날 수 있다. 이 저수지를 지나면 ‘한덕골성지’의 이정표를 만날 수 있는데, 한덕골은 과거 천주교인들이 모여 살았던 교우촌이다. 이곳 출신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의 부친 김제준을 비롯해 김시몬, 김마리아 등이 있으며, 지금은 천리 요셉성당에서 한덕골 교우촌 사적지를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

교우촌을 형성했던 한덕골성지의 모습

한덕골성지와 함께 주목해볼 장소는 바로 이윤일 성인(이하 이윤일)의 묘터다. 묘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예전에는 시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구의 관덕정으로 옮겨져 묘가 있었던 곳임을 알리는 비석이 남아있을 뿐이다. 여기서 이윤일에 대해 살펴보면 충청도 홍주 출신으로,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상주 갈골을 거쳐 지금의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 ‘여우목’에 있던 교우촌에 정착해서 살았다. 이곳에서 이윤일은 공소 회장으로 활동하며 포교활동에 매진했지만,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결국 여우목에서 체포되어 문경 관아로 압송된다. 당시 관아에서는 천주교에 대한 믿음을 버리면 살려준다는 입장이었지만,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면서 결국 이윤일은 대구로 이송되어 순교를 피하지 못했다.

문경 여우목성지. 교우촌이 형성된 곳으로 이윤일은 이곳에서 공소 회장으로 포교활동에 매진했다.

대구시 중구 반월당에 위치한 관덕정 순교기념관. 이곳에서 이윤일은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시신이 마지막으로 안장된 곳 역시 이곳이다.

최초 이윤일의 시신은 관덕정 인근에 가매장되었다가 가족들에 의해 날뫼(비산동)을 거쳐 현 위치에 묘가 조성되었다. 이후 1976년 한덕골에서 미리내 성지의 무명 순교자 묘역으로 다시 옮겨졌으며, 이윤일의 유해를 찾고 있던 대구대교구 발굴단에 의해 미리내에 묻힌 유해가 성인의 것임이 밝혀져 지금은 최초 순교지인 관덕정으로 옮겨졌다. 또한 현재의 묘터를 비롯해 미리내성지 내 성인이 묻혔던 자리 역시 함께 보존이 되고 있다.

용덕저수지 맞은편에서 볼 수 있는 이윤일의 묘터

이윤일의 묘터에 세워진 비석. 지금은 가묘가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도 이윤일은 103위 성인의 한 명이자 대구에서 특히 인지도가 높은 인물인데, 이름을 딴 ‘윤일성당’이 있는 것을 비롯해, 관련 학술연구가 꾸준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또한 현재 대구대교구의 제2주보 성인으로 모셔질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이윤일의 묘터는 용덕저수지 맞은편에 이정표를 통해 찾기가 어렵지 않은데, 시작점에서 580m 가량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 묘터에는 안내문과 함께 이곳이 이윤일의 묘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어떻게 보면 이윤일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조선 후기 천주교의 역사와 용인과 문경, 대구로 이어지는 궤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묘터를 찾을 때 인근에 위치한 한덕골성지 역시 함께 방문해보면 좋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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