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 되면 같이 해요. 선생님 아들이 떡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도 챙겼어요!”

일요일 오전 시간, 아주 친하지 않은 분이 점심을 먹자는 갑작스런 문자에 조금 놀라긴 했다. 보통 휴일 오전 시간은 누군가 만나자는 약속을 하기 맞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일까? 전화의 주인공은 오래 전 글쓰기 수업을 들으셨던 70대 수강생 M이었다.

M씨는 딱 보기에도 세련되면서도 기품 있고 우아한 이미지다. 심지어 넘보지 못할 것 같은 포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임에서 타인을 챙기는 모습에 모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시골에서 가지고 온 감자, 옥수수 등을 쪄 오시는가 하면 맛난 떡이나 과일 등을 싸가지고 오신다. 누군가가 먹는 모습만 보아도 기분이 좋다고 하시는 M. 일요일 아침 과연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실까.

약속장소에 갔더니 이미 일찍 자리를 잡고 계신다. 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예쁜 음식점을 미리 봐두셨다고 한다. 일요일 이른 점심, 갑작스러운 만남이지만 주고받는 이야기가 즐거웠다. 식사를 끝내고 난 후 자동차 트렁크로 가시더니 줄 것이 있다면서 차 문을 열어 보이신다. 보는 순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아이스박스 한 가득, 그리고 몇 가지 플라스틱 용기가 더 있다. 일일이 하나하나 설명까지 덧붙이신다. 제주도에서 지인이 보내셨다는 민어, 병어 등 생선 반건조하여 하나씩 일회용 비닐에 포장한 것들, 직접 담그신 간장게장 먹기 좋게 한 마리씩 포장하여 냉동한 것, 부산에서 직배송된 부산오뎅 한 봉지, 종류별로 하나씩 포장하여 얼린 쑥떡과 모찌떡, 직접 갓 담근 부추김치까지 먹을거리가 한 가득이다. 집에서 모두 먹는 것들인데 조금씩 싸서 가지고 온 것이니 부담을 갖지 말라 하고 주신다. 혹시나 안 먹는 것이 있으면 어떡하냐고 오히려 걱정된다고 한다. 천만의 말씀!

사실 그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선물을 받아들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친정 엄마, 시어머니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것들이다. 시어머니는 아예 안 계시고 친정엄마는 새어머니다. 그런 내게 친정 엄마가 싸주는 음식에 대한 따뜻한 기억은 없다. M이 아이스박스에 먹을 것들을 하나하나씩 챙겨 넣었을 손길과 마음이 느껴진다. 섬세한 마음결이 전달되었다.

챙겨주신 먹거리들이 모두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대화 중에 내가 흘려서 했던 말들을 꼼꼼히 기억하고 계셨나보다. 그래서 더욱 감동이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준 것도 사랑이지만,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선물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 사람이 무얼 원할까를 고민하면서 고르는 것이 선물이다. M으로부터 받은 먹거리 선물들이 모두 진정한 선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했다.

집에 와서 냉장고 서랍 칸칸이 먹을 것들을 챙겨 넣었다. 그리고 음식을 할 때마다 하나씩 비닐봉지에 묶어진 것들을 풀어서 먹어 본다. 생선, 오뎅, 김치, 간장게장... 냉장고가 가득 차니 안 먹어도 배부르다. 음식이 떨어질 때까지 M이 생각날 것 같고,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내 생애 가장 특별한 선물이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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