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착한 일과 나쁜 일에 대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곳은 가정이다. 그리고 보육 시설을 거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 ‘도덕’이라는 과목을 통해 인간의 근본에 대해서 배운다.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과 공동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어린 시절에 익힌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이미 다 안다.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더라도 비슷한 것을 또 배운다. 바로 ‘윤리’라는 과목이다.

학생들은 윤리를 배우면서 초등학교 때 배운 도덕의 심화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도덕의 조금 어려운 말이 윤리라고 생각했고 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배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윤리는 단지 도덕적인 사람을 만드는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행해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과목이 바로 윤리다. 도덕이 바르게 사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윤리는 지켜야 하는 것들을 알려준다.

사회복지사에게도 윤리가 있다.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이라는 제목으로 전문가로서의 자세나 노력, 클라이언트와 동료에 대해 지켜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처럼 모든 직업인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윤리가 있기 마련이다. 특정한 전문가로서의 윤리가 아니라 일반적인 노동자로서의 윤리도 있다. 이를 간단히 줄여서 직업윤리라고 한다. 직업을 가졌다는 것은 그 현장에서 노동을 한다는 것이기에 ‘직업윤리’는 곧 ‘노동 윤리’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는 근면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우리가 노동자를 근로자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는 근면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곧 노동자가 지켜야 할 윤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는 것은 일이 그 사람의 전부라는 뜻이다. 한편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저녁에 ‘일’이 있는 삶을 말한다. 일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일 자체를 하기 위해 사는 것은 불행한 삶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터에서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퇴근 후 가정으로 돌아가면 그곳에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일이 있는 공간이기에 가정에서도 여전히 노동 윤리가 존재한다. 단지 ‘노동 윤리’가 ‘가족 윤리’로 바뀌어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의 가족 윤리에 대한 시각은 한 가정 안에서 만들어지는 일은 모두 그 가정의 책임으로 본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노동을 한다면 그에 맞는 보상이 존재하지만 가정에서 하는 일은 ‘무급’이다. 가사노동은 당연히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 무급이라는 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가족 윤리’다.

만약 아무도 가사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자. 하루 이틀 지나면 살기 싫어지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사 노동을 해줄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그러면 비용이 발생한다. 결국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가사노동은 필수다. 그리고 비용이 발생하는 만큼 가사 노동은 당연히 무급이 아닌 유급이 된다. 가족 윤리는 이를 무급으로 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사노동은 일반적으로 여성의 몫이다. 가족 윤리에서 벗어나 가사 노동을 임금 노동으로 인정한다면 우리의 삶이 너무나 달라지지 않을까?

이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노동 시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주 40시간, 일 8시간이 기본 노동시간이라고 정해진지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이마저도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기본 노동시간은 남자가 외부에서 노동을 하고 여자는 가사노동을 한다는 전제에서 만들어졌다. 꼭 성별을 구분하지 않더라도 가사노동이 배제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노동시간이라는 의미다. 우리 사회는 여성의 사회활동(흔히 일하는 여성)을 권한다. 하루 최소 8시간을 일하고 어쩔 때는 추가 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온다. 늦은 가사노동을 하고 나면 수면시간 외에는 없다. 저녁이 없다. 그래서 맞벌이 부부의 삶은 늘 전쟁이다.

한 사람의 노동은 다른 사람의 가사노동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이것을 가정 안에서 책임져왔다. 우리의 일로 여겼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족 윤리다. 우리가 인간다운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일과 여가가 적절하게 조화된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윤리’와 ‘가족윤리’에 갇혀 있는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가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아간다. 단지 윤리를 지키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생각한다.

앞서 도덕과 윤리는 다르다 했다. 도덕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윤리는 다르다. 윤리는 헤게모니(Hegemonie)와 같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지를 지금까지 알고 있던 윤리를 벗어나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한다면 다양하고 즐거운 상상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 자체가 아니라 여가를 위해서다. 그렇기 위해서는 노동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감추어진 노동의 가치를 찾아내고 그 가치에 정당한 임금을 부여해 줘야 한다.

이건일(태평2동복지회관 관장)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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