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장헌세자, 추존 장조)의 ‘현륭원(顯隆園)’이 수원부의 읍치인 화산으로 옮겨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수원인 수원 화성이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었다. 계획도시이자 정조의 개혁을 상징하는 수원 화성은 22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원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원형의 훼손이 있었음에도 <화성성역의궤>라는 기록을 통해 온전한 복원이 가능했다는 점은 기록의 나라인 조선답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 우리나라의 성문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수원의 대표적인 명소인 수원 화성은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특히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수원 화성의 웅장한 문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서울의 한양도성처럼 수원 화성 역시 사대문이 설치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각기 문마다 저마다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수원 화성을 다녀갈 때 관심 있게 지켜보면 좋다.

■ 남문이 아닌 북문이 정문인 이유는? 수원 화성의 장안문

수원 화성의 성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상징적인 문을 꼽으라면 ‘장안문(長安門)’을 들 수 있다. 보통 북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성문은 옹성 형태의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장안(長安)’의 의미는 수도를 상징한다. <삼국지>에서 볼 수 있듯 당시 중원 대륙의 수도 중 ‘장안’이 있고, 우리 역사에서도 신라 때 김헌창이 난을 일으켰을 때 나라 이름을 ‘장안’으로 했을 만큼 유서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장안’이라는 이름이 수원 화성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당시 수원 화성의 위상을 짐작하게끔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듯 수원 화성의 지위가 기존 수원부에서 화성유수부로 승격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때 초대 화성 유수가 번암 채제공(1720~1799)으로, 정승급의 관리가 화성유수로 임명된 사실은 수원 화성의 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내부에서 바라본 장안문의 옹성.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또 하나의 성문인 셈이다.

보통 성문의 정문은 남문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한양도성을 예로 들면 남문인 ‘숭례문(崇禮門)’이 정문이다. 하지만 수원 화성의 경우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인데, 이는 정조가 원행길을 위해 수원 화성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입성했던 문이 장안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사진을 보면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온전히 보존되고 있었으나, 한국전쟁을 거치며 완전히 소실이 되었다. 이때 사진을 보면 포탄으로 인해 2층 문루의 1/3이 붕괴되고, 이듬해 문루가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1970년대에 이루어진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사통팔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수원 화성의 남문, 팔달문

수원 화성의 남문에 해당하는 ‘팔달문(八達門)’은 그 외형이 장안문과 매우 유사한데, 수원 화성의 성문 가운데 가장 공사가 어려웠던 구간이었다. 이는 예산의 증가로 이어졌는데, 최초 추정 예산보다 훨씬 많은 87만 냥이 소요되기도 했다. 이는 팔달문 공사를 하다 보니, 물이 많이 나와 추가 공사비용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러한 팔달문은 화성행궁에 머물던 정조가 현륭원을 전배하러 갈 때 지나간 문으로, 작년 정조 능행차 행사 때 팔달문을 지나는 행렬이 재현되기도 했다. 또한 팔달문은 그 이름처럼 사통팔달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도읍인 한양으로 가는 길에 수원이 자리하고 있어, 상업의 관점에서 보면 이보다 좋은 조건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상징하듯 지금도 팔달문 일대에는 팔달문 시장을 비롯해, 영동시장, 지동시장 등이 밀집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측면에서 바라본 팔달문의 모습

영동시장 쪽에서 바라본 팔달문. 성벽이 단절된 팔달문의 모습이다.

지금은 한양도성의 숭례문처럼 성벽의 좌우가 단절이 되어 있으며, 현재 수원 화성의 유일한 미복원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이때만 해도 성벽이 온전한 것을 볼 수 있으며, 팔달문 자체는 222년 전에 제작된 그대로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팔달문은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팔달문의 성벽에는 화서문과 창룡문처럼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이들의 이름을 기록한 ‘공사실명판’이 자리하고 있는데, “감동전목사 김낙순, 전부사 이방운, 패장가선 이도문, 한상희, 임준창, 전 오위장 신속, 석수가선 김상득 등 85명”이라 새겨져 있다. 현재 팔달문 내부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수원화성박물관에서 탁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축성 당시의 원형을 간직한 화서문

수원 화성의 서문에 해당하는 ‘화서문(華西門)’은 외형은 장안문이나 팔달문과 비교하면 크기에서 차이를 보인다. 쉽게 문루의 높이와 홍예문의 넓이를 보면 알 수가 있는데, 동문인 창룡문 역시 화서문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형 중 특징적인 것을 꼽자면 방어를 위한 반원형의 옹성 구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인데, 그 형태가 장안문이나 팔달문처럼 문이 있는 옹성이 아닌 옹성의 우측 부분 끝에 입구가 틔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옹성은 성의 방어를 위한 시설로 입구 쪽으로 들어온 적을 사방에서 공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의 모습. 축성 당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화서문의 편액. 초대 화성유수인 채제공의 글씨다.

또한 화서문의 성벽은 성돌로 쌓은 반면 옹성의 경우 안쪽은 성돌 바깥쪽은 벽돌로 쌓은 외형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화서문의 편액은 초대 화성 유수인 채제공의 글씨로, 화서문의 성벽에서도 공사 책임자의 이름을 기록한 ‘공사실명판’이 확인되고 있다. 이를 통해 기록 문화에 충실했던 조선 사회의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현장으로, 화서문과 함께 ‘서북공심돈(보물 제1710호)’ 역시 함께 눈여겨볼 것을 추천한다. 한편 화서문은 축성 당시의 원형을 간직한 몇 안 되는 건축물로, 현재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 수원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 공사실명판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수원 화성의 동문에 해당하는 ‘창룡문(蒼龍門)’ 역시 화서문과 동일한 외형을 보이는데, 홍예문 위에 1층 문루로 구성되어 있고, 성문 밖으로 반원형의 옹성이 돌출된 형태다. 창룡문을 중심으로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 연무대로도 불리는 ‘동장대’가 위치하고 있으며, 팔달문 방향으로 걷다 보면 성곽에 설치된 ‘봉돈’을 만날 수 있다.

수원 화성의 동문에 해당하는 창룡문의 야경

창룡문에 새겨진 ‘공사실명판’. 기록 문화에 충실했던 조선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창룡문은 일제강점기 당시만 해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며 문루가 소실되었다. 따라서 원형을 간직한 팔달문이나 화서문과 달리 복원된 창룡문, 장안문은 보물로 지정되지 못한 상태다. 화서문과 마찬가지로 창룡문 역시 공사 책임자의 이름을 기록한 ‘공사실명판’이 남아 있는데, 보존 상태가 좋아 유관으로 식별이 가능하니 창룡문을 가실 때 함께 보면 좋다. 이처럼 수원 화성의 사대문은 지금도 온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해당 문에 담긴 의미 역시 작지 않기에 관심 있게 지켜볼 역사의 현장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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