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길을 걷다 보면 그 위를 살아가는 사람이나 건축물은 변하지만, 길 자체는 변함없이 유지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수원 화성 내 행궁동 일대의 경우 시대에 따라 건축물은 변했지만, 길 자체는 222년 전과 변함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길 위에 남겨진 흔적은 때론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정조의 원행길이다. 흔히 ‘정조 능행차’로도 불리는 이 행렬은 사도세자(장헌세자, 추존 장조)의 현륭원을 수원부의 화산으로 옮기고, 새로운 신도시 수원 화성을 만들면서 시작된다. 정조는 자신의 재위 기간 동안 총 13차례에 걸쳐 원행길에 올랐는데, 재위 기간을 고려하면 매년 한 차례씩은 방문했을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다.

수원 화성 내 행궁동. 붉은색 표시는 옛길로, 건물은 변했을지언정 길 자체는 222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정조의 화성 원행길. 두 코스로 구분이 되는데, 1795년 새로운 길인 ‘한양-노량진-시흥-안양-군포-의왕-수원’ 구간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정조의 원행길은 크게 두 코스로 구분이 되는데, 기존의 ‘한양-노량진-과천-군포-의왕-수원’으로 이어진 길과 1795년 원행길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한양-노량진-시흥-안양-군포-의왕-수원’의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옛길과 새로운 길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새로운 길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여러 설들이 있는데, 임오화변(1762)으로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가담한 김상로의 묘가 과천에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나,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원행길을 나서 지형이 높은 과천을 피하기 위해 안양 쪽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는 견해 등이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면서 정조의 원행길은 여러 역사의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이 가운데 주목해볼 사례로 안양 만안교를 들 수 있다.

■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 석교인 만안교, 단순한 다리가 아닌 이유

흔히 ‘다리’라고 하면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강이나 하천 등에 세워진 것을 말하는데, 소설 <소나기> 속 징검다리 역시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보통은 어떤 재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나무다리(木橋)’와 ‘돌다리(石橋)’, ‘철제다리(鋼橋)’ 등으로 구분된다. 조선시대의 경우 나무다리와 돌다리가 주를 이루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다리는 재질의 특성상 돌다리가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왕십리의 한양대 방향에 위치한 ‘살곶이다리(=전곶교, 보물 제1738호)’를 들 수 있다. 또한 지방마다 아치형의 돌다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영광 도동리 홍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90호)’와 진도 남도석성의 하천에 세워진 ‘쌍운교’나 ‘단운교’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광 도동리 홍교. 아치형의 투박하면서도, 소박한 멋이 있다.

진도 단운교의 전경. 자연적인 석재를 이용한 아치형의 다리로, 흙과 잔디로 상판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왕십리 한양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살곶이다리.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돌다리다.

‘안양 만안교(萬安橋,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는 1795년 원행길의 새로운 길로 ‘한양-노량진-시흥-안양-군포-의왕-수원’ 구간이 신설되며 만들어진 다리로, 그 외형은 7개의 홍예 위에 화강암 재질의 판석이 놓여진 형태다. 앞선 조선의 대표적인 돌다리인 살곶이다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지방에 있는 영광 도동리 홍교나 진도 쌍운교, 단운교와 비교해 보면 그 크기와 재질이 확연히 구분된다. 이같은 사실은 만안교를 만드는 데 있어 많은 공력을 들였음을 보여준다는 점과 실제 다리 남쪽에 있는 만안교 비석의 내용을 통해 관할인 경기 관찰사 이외에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 인근 지역인 화성, 개성, 강화유수부 등이 참여한 공사였음을 알 수 있다.

하천에서 바라본 만안교의 모습. 7개의 홍예 위에 화강암 재질의 상판을 놓았다.

측면에서 바라본 만안교의 모습. 상당한 공력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다리 남단에 있는 만안교 비석의 모습

지금은 공원이 조성된 만안교. 안양 사람들에게 만안교는 지명과 행정구역, 놀이 등을 통해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현재 만안교는 관악역 1번 출구를 나와 안양 방향으로 500m를 걸어가면 만안교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현 위치는 국도 확장으로 이전, 복원되었다는 점을 참고하면 좋다. 안양 사람들에게 있어 만안교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다. 지명과 행정구역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으며, ‘만안교 다리밟기’ 행사가 열리는 등 다리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정조가 원행길을 위해 지나갔던 뜻 깊은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의 요소까지 가미하고 있다. 만안교는 본래 “만년 동안 편안히 건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름의 의미처럼 앞으로도 오래도록 보존하고 지켜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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