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는 경기동행지수·설비투자 등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되어 있고, 일자리 문제와 같은 서민경제를 짓누르는 많은 쟁점들이 부각되어 있다. 그 중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탈원전 정책은 여야 정치인들과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먼저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제성장의 이론과 방법은 다양하다. 또한 어떤 특정 경제이론도 모든 시대와 지역에서 다 통용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경제이론과 그에 따른 정책은 그 나라의 특정된 환경과 여건에 따라 유연성 있게 적용 되어야 한다.

특히 시장(市場)의 반응이 중요하다. 누구나 알듯이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작동하여 가격이 정해지고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경제정책의 시행은 시장의 메커니즘(mechanism)을 파악하고 이를 잘 이용하여야 한다.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정책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시장은 선(善)이 아니며 또한 이념과는 상관이 없다. 이익을 쫓아 움직이는 냉혹한 곳이다. 다만 이 시장은 공정한 게임이 작동하도록 법과 제도를 통한 국가의 최소한의 개입이 이루어져야 할 뿐이다.

어느 정책도 나쁜 목적을 가지고 시행하는 것은 없다. 아무리 이상적인 정책이라도 시장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방향으로 작동하는 지가 문제이다. 따라서 사전에 정책의 정교한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또 작동을 시뮬레이션 해 보는 것이 좋다.

시행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면 즉시 이것을 인정하고 정책방향을 조정하거나 전환하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이것은 이념의 영역이 아니다. 마치 성전(聖戰)을 치르듯이 내 달리는 것은 극히 위험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담당해야 한다.

두 번째는 탈원전 정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에너지 관련 공기업에 평생을 종사했던 필자의 국가 에너지정책에 대한 상식은 다음과 같다. 즉 부존 에너지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다양한 에너지원(源)별로 적절한 경제적 조합과 안정적 공급의 원칙에서 전력공급계획을 작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특정 에너지가 국제적인 전쟁이나 정치적 이유로 예기치 못한 공급부족과 가격상승의 경우를 대비하여 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함이다. 에너지원 중 원자력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화석연료와 비교할 때 가장 값싸고 대기환경보존에 유리한 에너지임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경제정책으로서의 국가 에너지 정책은 몹시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과거 산업화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그 동안 값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왔다는 것이다. 비싼 전력요금으로는 생산원가 상승으로 모든 공산품의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상식이다. 더구나 수출산업으로 먹고 살아야 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에너지 가격은 매우 중요하다.

탈원전 정책으로 향후 분명히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을 수 없고 온 국민과 기업은 이를 부담하여야 하므로, 이 정책의 시행 전에 반드시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었어야 했다. 풍력이나 태양광 등의 대체 에너지로는 그 효율성이나 우리나라의 지리적 여건상 대안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독일이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정책을 시행하면서 2000년 이후 전기요금이 2배 이상 올라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 안 된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임이 명확하다.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의 탈원전 정책은 경제적 측면과 함께 전력공급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우리와 다르다. 우리의 전력망은 우리나라 독자의 고립된 전력계통으로 운영되고 있다. 즉 국제적인 문제로 특정 화석연료의 수입이 곤란할 경우(또는 예기치 못한 폭염·한파 등으로 인한 전력수요 급증, 발전소 및 전력계통의 불시 고장 등) 이에 따른 모자라는 전력을 수입할 전력망이 구성되어 있지 않아 국가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은 ‘슈퍼 그리드’라고 하는 국가 간 전력망, 즉 북유럽 슈퍼 그리드에 연결되어 관련 각국의 풍력·수력발전 전력을 서로 융통함으로서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관련 있는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이제 논의 단계로서 현재는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갈 길이 요원한 상태이다.

탈원전의 또 다른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가 원전산업의 붕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 년간 피땀 흘려 이루어 놓은 선진국 최고 수준의 원자력기술이 쓸모없게 되어버린다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될 것이다. 또 양수발전소 운영에 필수적인 원자력발전소가 없을 경우, 우리나라의 여러 개의 양수발전소 마저 폐기하게 되어 이 또한 국가적 낭비가 된다.

탈원전 정책공약의 결정에 영화 ‘판도라’와 친환경론자들의 영향이 컸다고 전해진다. 물론 원전사고는 무서운 것이고 그 피해는 막대하다. 그러나 많은 나라들이 아직 원전을 이용하고 있다. 막연히 위험하니까 피하기보다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더욱 잘 관리해서 안전하게 운영하겠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동차로 인한 교통사고를 무서워해 이것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듯 말이다.

모든 경제정책은 이념을 떠나 실용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입안되어야 하며, 또 실행에 있어서 그 반작용에 대한 충분한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경제는 어느 시대, 어느 이념 하에서도 국민생활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김귀근(오산 지역정책시민연합 대표)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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