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생 시절, 나는 ‘형법’보다 ‘민법’을 좋아했다. 저마다 취향에 맞춰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목이 달랐는데, 이 두 과목은 명확하게 갈렸다. 그런 내가 ‘형법도 생각보다 괜찮네’ 싶었던 때가 왔었는데, ‘범죄’ 부분을 배우면서 부터였다.

형법상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세가지를 기억하면 된다. ‘구성요건’, ‘위법성 조각사유’, ‘책임능력’. 이 세가지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범죄가 성립된다. 즉 형법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 가지의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범죄는 ‘물 건너 갔다’는 말이기도 하다.

위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더 많을 거라고 본다. 그렇지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심신장애(심신상실과 심신미약)’라는 단어는 익숙할 것이다. 현행 형법 제10조 1항과 2항은 심신장애로 ‘책임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있어서 죄를 면하거나 형벌을 감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마지막 형법의 조건인 ‘책임능력’이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는 ‘탈락’인 셈이다.

당시 나는 학생 신분으로서 ‘심신미약’이 인정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의 범죄사건을 암기했다. 칼로 찔러서 누군가를 죽였다, 성폭행을 했다, 이런 무서운 사례가 나와도 담담하게 외웠다.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피해자가 당했을 고통에 대해서는 가늠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때의 마음이 더이상 들지 않는다. 나는 이제 ‘피해자’의 가족들이 살아갈 삶의 무게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으로 인해 며칠 동안 마음이 시렸고 무거웠다. 그리고 피의자가 우울증 진단서를 냈다는 말에 이따금 분개하고 분노했다. 이쯤되면 ‘심신미약’은 ‘살인면허’가 된 것이 아닌가. 어떻게든 감형의 구실이 될 수 있으니 피의자 입장에서는 ‘밑져야 본전’인 것이다. 아직 법원의 선고가 내려진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 심신상실로 무죄가 선고되면 대개 ‘치료감호’ 처분이 내려진다. 국립법무병원(공주치료감호소)에서 수용된 채로 일정 기간 치료를 받는다. 이 전에 심신장애 여부를 가릴 때는 1-2개월에 걸쳐 관찰, 추적조사를 한다.

문제는 우리국민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법감정’은 이제 사법불신을 넘어 사회적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사건으로 인해 청와대 국민청원이 80만을 돌파한 것이 단적인 예다. 진심으로 정치권과 법조계에 묻고 싶다. 그동안 형벌수준에 대한 뼈저린 고민과 개선이 있었는가.

한 법학 전문대학원 겸임교수가 제법 큰 언론사에 쓴 칼럼을 보고 콧방귀가 나왔다. “몇가지 사건을 비교해서 양형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중략) 단순히 법조3륜의 동업자 정신이나 심신미약이라는 금과옥조가 양형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니, 우리가 매달릴 끈이 ‘사법부’가 아닌 ‘국민청원’, ‘촛불시위’, ‘네티즌 수사대’가 아니었을까. 이번 피해자는 고통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치의를 비롯한 사람들이 고통을 ‘언어화’하면서 우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고통을 마주하며,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피해보자.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