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6.25 전쟁으로 부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도 반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간 전쟁이 일어난 날짜는 알아도 정작 휴전이 된 날(1953년 7월 27일)을 아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전쟁을 겪은 세대보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더 많기에 한국전쟁은 역사 속의 한 장면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이라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임진각. 개성까지 불과 22km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전쟁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지난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휴전선과 비무장지대라는 오갈 수 없는 선이 그어져 한반도의 허리를 겹겹이 감싸고 있다. 이에 따라 부산을 출발해 서울과 평양을 거쳐 신의주로 이어지던 경의선 열차가 운행을 멈춘 것 역시 이만큼이나 시간이 흘렀다는 말이다.

멈춰 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철마는 언제쯤 달릴 수 있을까?

예전에 학교에 다니면서 배우던 책 속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말이 지금도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우리가 전방이라 부르는 ‘DMZ(Demilitarized zone, 이하 DMZ)’는 여전히 긴장과 고요함이 교차하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지난 20년간 정부의 성향에 따라 대북관계는 극과 극을 달렸고, 최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남북 관계에도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최전방이라 부르는 DMZ 역시 안보관광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늘은 파주 도라산역 일원과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시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인 도라산역

현재 경의선 구간 중 최북단 역은 도라산역이다. 하지만 해당 지역은 DMZ 내에 자리하고 있기에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따라서 도라산역과 인근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지참하고, 관광이라는 목적에 한해 가능하다. 도라산역은 지난 2002년 3월에 완공된 역으로, 현재 우리 열차가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역이다. 남북 관계가 새로운 시절을 맞은 2000년 6월,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도라산역이 세워졌다. 즉 새로운 남북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도라산역은 우리들에게 각인되었다.

도라산역. DMZ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관광 목적으로 방문할 수 있다.

도라산역이 완공된 뒤 이곳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방문해 목침에 서명을 남기며 평화를 기원했다. 지금도 이 목침은 도라산역에서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도라산역은 평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한편 도라산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도라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경순왕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나라를 고려에 바치며 고려로 귀부하게 되고 태조 왕건의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고향인 경주로 되돌아가지 못했고, 경순왕의 아내인 낙랑공주가 도라산에 지은 암자를 방문해 고향을 바라봤다는 전설은 왠지 지금의 이산가족의 슬픔과 묘하게 겹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제3땅굴에서 바라본 도라산. 정상에 있는 건물은 전망대다.

■ 안보관광으로 만날 수 있는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

앞서 이야기했듯 도라산역은 DMZ 내에 자리하고 있기에 민간인의 출입과 차량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따라서 안보관광 시에는 필수적으로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안보관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다. 제3땅굴은 우리나라로 귀순한 김부성 씨의 증언에 의해 땅굴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고, 수색 과정에서 확인이 되었다. 해당 땅굴의 위치는 판문점 남방 4km 지점에서 발견되었는데, 서울까지 50km 남짓이고, 민통선 마을까지는 불과 3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안보관광의 대표적인 코스인 제3땅굴

도라전망대. 북한 쪽 방향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

특징점이 있다면 땅굴의 벽면에 검은 칠이 있는데, 이는 북한이 땅굴이 발견될 것을 대비해, 석탄가루를 묻혀 둔 것이다. 즉 남침 통로가 아닌 탄광을 파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으로, 그야말로 눈속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땅굴은 휴전선 인근에서 여러 개가 발견되었는데, 북한의 호전성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역으로 생각하자면 우리와의 격차가 벌어져 이것 밖에는 우위에 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멀리 개성공단과 송악산, 개성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도라산역의 내부.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한편 도라산의 정상에는 도라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금은 새로운 전망대가 세워져 관람 여건이 더 좋아졌다. 전망대에 서면 개성공단을 비롯한 송악산과 개성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휴전선 인근에 있는 남한의 대성동 마을과 북한의 기정동 마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각기 태극기와 인공기가 철책선 사이로 펄럭이는 모습에서 휴전선을 두고 대치하는 우리 분단의 현실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도라산역 일대는 적막하다. 도로는 있지만 군부대 차량을 제외한 일반 차량은 찾기가 어렵고, 새삼스레 민간인 통제구역이라는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도라산역을 한번 가볼 만하다고 느끼는 건 그곳에 적힌 발상의 전환과 같은 문구다.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흔히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종착역이 아닌 유라시아로 향하는 첫 시작점이라는 이 말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아픔과 희망, 불안과 평화가 공존하는 도라산역. 언제가 통일된 평화로운 이 땅에서 유라시아행 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는 그날이 오기를 희망해본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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