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가천대역을 하차해 2번 출구로 나오게 되면 성남 봉국사(이하 봉국사)의 이정표를 보게 되는데, 이정표에서 대략 2km 정도를 올라가다 보면 봉국사와 마주하게 된다. 지금은 산동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변이 개발되어 봉국사는 마치 도심 속의 사찰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의외로 봉국사는 우리 역사에서 재미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간직한 곳이다. 대표적으로 숙빈 최 씨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위치한 봉국사의 전경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을 보면 영조(=연잉군)의 어머니인 숙빈 최 씨가 세상을 떠난 뒤 내관 장후재(張厚載)가 장지 조성과 관련해 당시로는 광주의 경내에 있었을 산에 장지를 얻었다고 밝히자 이에 숙종이 “명선공주(明善公主), 명혜공주(明惠公主)의 묘산(墓山) 내의 청룡(靑龍)의 터에 입장하려는 계책”이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 일로 장후재는 파직당하고, 숙빈 최 씨의 장지는 연잉군이 직접 지관을 데리고 찾아다닌 끝에 지금의 파주 소령원에 묻히게 된다. 즉 숙종은 “어디 후궁이 공주와 한 곳에 묻히려고 하는가?”라며 날선 반응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 씨의 소령원. 최초 봉국사 인근이 장지의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여기서 봉국사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봉국사 자체가 창건된 것은 고려 때로, 이후 태조 때 중수를 거쳐 현종 때인 1674년 크게 중창이 되었다. 당시 중창이 된 이유는 현종과 명성왕후 김 씨 사이에서 태어난 명선공주와 명혜공주가 일찍 세상을 떠나, 봉국사 인근에 장지가 조성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봉국사는 공주들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의 성격을 했고, 이러한 공주들의 묘역이 있는 산에 숙빈 최 씨의 묘를 조성하려 했던 것이다. 당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숙종은 불쾌해 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숙종에게는 명선공주와 명혜공주는 누이였다는 점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 봉국사 인근에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묘가 없는 이유는?

그런데 지금은 봉국사 인근에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 봉국사는 분명 두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의 성격인데, 정작 그 묘가 없다고 하니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그 역사의 내면을 보면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있다. 우선 현종의 가계를 살펴보면 명성왕후 김 씨 사이에서 숙종과 명선공주, 명혜공주, 명안공주를 두었다. 재미있는 점은 현종은 조선의 왕 가운데 유일하게 후궁을 두지 않았다는 점인데, 때문에 자식은 1남 3녀 밖에 두지 못했다. 바로 이 가운데 명선공주와 명혜공주가 천연두로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현종이 “심사가 막히고, 혼미하다”라며 애통해 하는 모습도 무리는 아니다. 한편 공주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공주들의 남편인 부마가 정해져 있었기에 부마의 작위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삼릉 내 비공개 지역인 왕자, 공주의 묘 전경

명선공주의 묘

명혜공주의 묘. 본래 있던 비석과 석물은 흔적도 찾기 어렵다.

당시 명선공주의 부마는 신안위(新安尉) 맹만택(孟萬澤), 명혜공주의 부마는 동안위(東安尉) 신요경(申堯卿)으로, 가례는 올리지 않았지만, 이미 위호(尉號)를 받은 상태여서 논란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현종은 이들 부마들에 대한 위호를 환수하게 된다. 또한 현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숙종은 친히 제문을 지어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봉국사 인근에서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묘를 찾을 수가 없다. 현재 이들 묘는 고양 서삼릉 경재로 옮겨져, 지금은 공동묘지처럼 조성된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분명 비석과 석물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 없이 그저 서삼릉 내에 그 흔적만 간신히 남기고 있을 뿐이라는 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도심 속의 사찰, 봉국사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

이처럼 봉국사는 원찰의 관점에서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원찰이었다는 사실과 인근으로 영창대군, 평원대군, 제안대군 등의 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헌릉의 옆에 있기 때문으로, 왕실에서 나름 중요하게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봉국사는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묘가 서삼릉으로 천장이 되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크게 훼손이 되어 옛 모습을 잃어버리며 퇴락하게 된다. 안내문을 보면 1958년 법운(法雲)에 의해 중수가 되어 지금에 이르는 동안 새롭게 만들어진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봉국사 대광명전

현재 봉국사에서 관심 있게 볼 건물은 단연 ‘대광명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1호)’이다. 다른 건물과 달리 1674년에 지어진 옛 건물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데, 성남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내부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09호)’과 함께 후불탱화인 ‘아미타불회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10호)’가 자리하고 있어, 대광명전과 함께 보면 좋다.

봉국사 대광명전의 내부. 목조여래좌상과 아미타불회도

대광명전 좌우에 자리한 석수. 사자와 유사한 형태다.

재미있는 점은 대광명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데 비해 봉국사의 경우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는 점과 대광명전의 좌우로 사자와 유사한 ‘석수(石獸)’가 있어 관심 있게 보면 좋다. 이처럼 도심 속의 작은 사찰에 불과하지만, 봉국사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우리가 봉국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 이해하려고 가까이 다가설 때 그때 보이는 봉국사의 모습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는 점에서 관심 있게 봐야 할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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