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카카오톡 영상통화가 연결됐다. 이윽고 상대방 얼굴이 각자의 핸드폰 화면에 뜬다. 얼굴을 맞대며 수다를 떨 법한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손짓과 표정(NMS‧None Manual Signals)만 부지런히 오고 갈 뿐이다. 수화통역사로 일하는 김주연(40·사진) 씨의 일상 중 하나다.

“농인 분들이 급한 일이 생기셨을 때 저에게 영상통화를 하곤 해요. 급한 상황이거나 빠른 처리를 요하는 경우들도 있어서 바로 응대하기 위해 휴대폰에 늘 신경을 쓰죠. 결혼 초에는 남편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휴대폰 알림이 오면 무조건 먼저 확인을 해서 남편이 싫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적응된 것 같아요(웃음).”

원주수어통역센터에서 일하는 김주연 씨는 6년 차 수화통역사다. 수어 통역센터는 농인(청각장애인)이나 농인과 소통이 필요한 청인(비장애인), 기타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수어 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주연 씨는 원주 시정방송에서 방송통역을 하기도 하고 사단법인(강원도농아인협회 원주시지회)에서 운영하는 ‘원주수어교육원’에서 수어를 배우고자 하는 청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종종 농인 부모에게서 말보다 수화를 먼저 배운 수화통역사들이 있다. 농인 부모를 가진 청인(들을 수 있는 사람)을 ‘코다(CODA · Children of Deaf Adults)’라고 한다. 어렸을 때 말보다 수어를 먼저 배웠기 때문에 수어가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주연 씨의 경우는 그런 케이스가 아니다. 대학 전공 역시 사회학이었다. 주연 씨는 수화를 배우게 된 것은 ‘우연’이었지만, 수화통역사가 된 것은 ‘운명’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사회학을 공부하며 복수전공으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어요. 4학년 무렵 학교 안에 수화교실이 있었어요. 사회복지 일을 하며 수어까지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싶었는데, 졸업 후 일을 시작할 때 농아인 협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죠. 무심코 배우기 시작했던 수어를 계기로 천직을 만나게 된 듯해요.”

20대 중반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제2외국어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주연 씨는 농아인 목사님이 운영하는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을 만큼 열심히 공부를 했단다. 그 결과 수화통역사 자격(2004년/민간 수화통역사 8기, 2006년/국가공인 수화통역사 1기)을 취득할 수 있었단다.

“‘수어를 잘하려면 얼마나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이야기해 드립니다. ‘영어를 잘 하려면 얼마나 배워야 할까요?’라고. 물론 수어와 영어는 다른 언어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 기관에서 수어를 교육하고 있어 정규교육과정으로 이야기를 드리자면 기초 Ⅰ·Ⅱ(3개월 주 2회 혹은 주 1회) 수료를 한다면,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영화 보러 갈까요’‘오늘 뭐 먹을래요? 등의 대화는 하실 수 있답니다. 그래도 그 이상 공부하셔야 수화 좀 배웠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주연 씨의 경우 수화통역사로 일하면서 뿌듯함도 많고 그만큼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도 많단다. “생각해보면 농인들의 삶과 함께 했던 것 같아요. 출산하는 분의 통역을 하면서 함께 분만실에 갔던 일도 있고요. 비교적 힘든 출산이어서 흥분한 간호사가 아이의 머리가 보이니 빨리 와서 보라고 하기도 했죠. 결혼 상견례부터 결혼식까지 통역했던 일도 있고 대기업 면접을 준비하는 분의 통역을 맡으면서 함께 모의면접 연습을 해보던 일도 있고 농인분이 쌍꺼풀 수술을 하셔서 같이 상담하러 가기도 하고요. 소소한 일들이지만 참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습니다. 수어를 모어로 하는 농인과 소통할 수 있는 건 수어의 매력이지요.”

주연 씨는 초등학생 6학년, 2학년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주연 씨의 자녀들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엄마가 일하는 것을 계속 지켜봤기에 엄마의 일을 자연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엄마가 일하는 현장을 와보기도 하였고, 수어 노래 공연들을 같이 해 보기도 했어요. 그래서인지 TV에 나와 방송 통역을 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요.(웃음) 그래도 한 번씩 대화를 나눠보면 엄마가 열심히 하고, 멋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 것보다 행복한 직장인이 있을까. 주연 씨는 ‘앞으로 어떤 수어 통역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꾸준히 농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답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찾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 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되면서 제도적으로 농인과 한국수어가 규정됐어요.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가 된 것이지요.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농인과 한국 수어를 알고, 언어인 수어에 많은 관심과 배움에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