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를 “미래를 보는 거울”로 표현 하는데, 이는 과거의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생각해보면 오늘의 상황이 과거의 어느 한 장면과 유사하게 느껴지는 건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 그 사례로 ‘임진왜란(1592)’을 들 수 있는데, 이 전쟁의 참화는 조선에 있어 큰 상처를 남겼다. 또한 단순히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 아닌, 명나라의 참전으로 이어진 동북아시아의 국제전쟁으로, ‘임진왜란-정유재란’이 끝난 뒤 국제질서는 판이하게 달라질 만큼 그 여파가 컸다.

고양 덕양산에 위치한 행주산성대첩비.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당시 중원의 맹주였던 명나라는 참전 이후 쇠퇴가 더욱 가속화되었고, 결국 만주에서 발흥한 청(=후금)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멸망하는 수순을 밟았다. 또한 일본의 경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세상을 떠난 뒤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내전이 벌어졌는데, 여기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승리하며, ‘도쿠가와 막부’를 세웠다. 반면 조선의 경우 나라가 망하거나, 지배세력이 교체된 것은 아니지만 임진왜란이 정치, 사회,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을 분명했다. 또한 임진왜란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애초에 조선은 임진왜란을 왜구가 난을 일으킨 것에 불과하다며 평가 절하했다.

징비록을 저술하는 류성룡. “지날 잘못을 징계하고,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미로 징비록을 저술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인 선조(재위 1567~1608)부터 임진왜란에서 승리한 것이 명나라 때문이라 말하고 있는 점은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과 도제찰사를 지낸 서애 류성룡(1542~1607)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지난 잘못을 징계하고,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미로 ‘징비록(懲毖錄)’을 지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처절한 반성문이었던 이 책은 조선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세를 떨친 기현상이 벌어졌다. 조선에서 임진왜란은 하루 빨리 잊고 싶은 기억인데 비해 일본에서는 징비록을 통해 자신들의 실패를 반추한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결국 이러한 인식 속에 임진왜란을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 청나라를 두고 보인 상반된 시각, 척화파와 주화파의 사이에서

이처럼 당시 조선에서 명나라의 도움으로 나라의 명맥을 이었다는 인식은 곧 사대의 강화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명분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바로 광해군의 폐위를 보면 알 수 있다. ‘인조반정(1623)’으로 광해군(재위 1608~1623)이 폐위되는데 있어 명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숭명배금(崇明排金)’, 즉 사대의 예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 ‘광해’의 한 장면에서 볼 수 있는데, 이야기의 요지는 크게 후금(=청)의 세력 요동으로 확장하면서 이를 막기 위해 명나라가 조선에 군사를 파병할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남양주 광해군묘. 광해군의 폐위 명분 중 하나가 ‘숭명배금’으로 사대의 예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은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2만 군사를 파병하게 되는데, 이 장면이 ‘광해’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2만 군사를 파병한 뒤 벌어진 전투가 바로 ‘사르후 전투(=심하전투, 1619)’로, 후금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이 사르후 전투의 결과는 국제정세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는데, 명나라의 입장에서 더 이상 후금의 팽창을 막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또한 전투에 참여한 조선군은 패전으로 인해 포로가 되어 1년 6개월 가량 포로수용소에서 고초를 겪게 된다. 이러한 당시의 기록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바로 이민환이 지은 <책중일록>이다. 이러한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재위 1623~1649)는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위해 ‘숭명배금’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 같은 요인은 후금의 침략을 부르는 한 요인이자 좋은 명분을 제공해주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파주 장릉.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인조의 능이다.

그런데 생각해봐야 할 점은 후금(=청)의 조선 침략이 조선 때문이 아닌 후금의 내부 요인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당시 국제질서에서 외교와 경제의 중심은 명나라로, 마르셀 모스(1872~1950)의 <증여론>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증여와 교환 체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조공인 것이다. 흔히 조공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지만, 우리가 조공을 통해 예물을 바치는 만큼 중국의 황제는 우리가 바친 것 이상으로 더 많은 하사품을 줘야 했다. 이는 주고 싶어서 줬던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함으로써 변경의 질서를 지키고, 동시에 황제는 명예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교환 매커니즘이었다. 이러한 증여와 교환의 체계에서 보면 명나라와 후금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자연스럽게 후금은 명나라로부터 어떤 것도 받을 수가 없었다. 즉 현재의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데 있어 경제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강화도 연미정. 정묘화약이 맺어진 현장으로, 형제의 맹약을 맺는 선에서 쉽게 화약이 맺어졌다.

따라서 후금(=청)의 조선 침략이 단순히 ‘숭명배금’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한 단면만을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후금의 조선 침략에 있어 ‘정묘호란’은 조선과의 정묘화약이 이루어져 형제의 맹약을 맺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반면, ‘병자호란’의 경우는 달랐다. 병자호란 당시 후금은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고, 스스로 황제국임을 선언했다. 당시 청나라가 조선에 요구한 조건 역시 군신의 관계, 더 나아가 이제 명나라와 청나라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었기에 조선 조정에 미친 영향은 작지가 않았다. 결국 병자호란의 결과로 우리가 인식하는 ‘삼전도의 굴욕’은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당시 조정은 영화 <남한산성>에서 보듯 최명길(1586~1647)의 주화파와 김상헌(1570~1652)의 척화파의 대립으로 상징된다.

홍익한의 묘.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학사 중 한 명으로 척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홍학사 비각의 전경

결과적으로 47일에 걸친 남한산성의 항쟁은 인조의 굴욕적인 항복으로 귀결되어, 우리 역사에 있어 ‘삼전도의 굴욕’으로 기록된다. 이후 청나라는 자신들에게 반대했던 척화파 대신들을 끌고 가게 되는데, 바로 삼학사였다. 삼학사는 윤집(1606~1637), 오달제(1609~1637), 홍익한(1586~1637)으로, 이들은 청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신념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또한 청나라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 이른바 삼전도비에는 청 태종이 성덕을 베풀어 조선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자화자찬식의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서 성덕의 의미는 조선이 망할 위기를 청나라가 은혜를 베풀어 구해주었다는 의미로, 이른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강조한 것이다. 즉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 망국의 위기에서 구해주었으니, 명나라에 하던 사대의 예를 청나라에 하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서울 삼전도비.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한 역사의 교훈으로 삼전도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임진왜란과 연이어 벌어진 병자호란은 우리 역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자 분기점이 되었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청나라에 고개를 숙였지만, 여전히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멸시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쓴 <열하일기>를 보면 당시 조선인들이 청나라를 대했던 인식을 엿볼 수 있는데, 오랑캐라고 멸시했던 청나라의 발전된 문명은 박지원을 비롯한 일부 선비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이른바 ‘북학(北學)’의 학풍이 형성이 될 수 있었다. 즉 오랑캐라도 배울 것은 배우자는 주의로, 대표적으로 박지원과 홍대용, 박제가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북학은 주류가 되지 못했고, 여전히 청나라를 바라보는 인식은 오랑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 조선은 일본에 의해 ‘경술국치(1910)’를 당하며, 일제강점기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단순히 역사 속의 한 사건이 아니다. 어쩌면 당시와 놀랍도록 닮은 한반도의 국제정세는 역사의 교훈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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