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역사에 있어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1453)은 여러 인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배경이 되었다. 당장 단종 자신은 계유정난 뒤 상왕으로 물러나고, 이어 사육신의 상왕복위운동을 계기로 결국 영월로 유배 뒤 비극적인 삶을 마감해야 했다. 여기에 단순히 단종 한 사람만이 아닌 단종의 왕비도, 단종과 관련이 있는 인물 등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친동생인 단종의 비극적인 운명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그 여파로 자신의 남편마저 죽음에 이르렀던 경혜공주의 삶은 그 자체로 비극적인 운명이었다. 따라서 오늘은 경혜공주의 삶의 궤적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고양에 조성된 묘를 함께 조명해보고자 한다.

■ 문종의 적장녀이자 단종의 친누나인 경혜공주의 삶

경혜공주의 아버지인 문종은 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통해 실질적인 세종의 후반기를 책임졌다. 분명 현군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문종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여자 문제였다. 문종은 세자 시절 3번의 결혼을 했는데, 휘빈 김씨와 순빈 봉씨가 불미스러운 일로 폐출이 되었다. 이에 더 이상의 국혼을 추진하지는 못하고, 기존에 문종을 모시던 세자궁의 후궁 중 양원 권씨를 세자빈으로 책봉했다. 이때 세자빈으로 책봉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유가 바로 문종과의 사이에서 경혜공주를 낳았기 때문이다.

문종의 적장녀이자 단종의 친누나인 경혜공주의 묘

이렇게 양원 권씨가 세자빈으로 책봉되면서 경혜공주 역시 평창군주로 봉해지고, 이후 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경혜공주로 봉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인 세자빈 권씨는 훗날 단종을 출산한 뒤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이후 문종은 다시 세자빈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문종의 핏줄을 이은 건 단종과 친누나인 경혜공주뿐이었다. 따라서 두 남매간의 사이가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며, 실제 단종이 왕위에 오른 뒤에도 경혜공주의 사저를 자주 찾았다. 한편 경혜공주는 정충경의 아들 정종과 혼인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정종은 위호를 받아 ‘영양위(寧陽尉)’로 불리게 된다.

경혜공주의 친동생인 단종의 ‘장릉(莊陵)’. 왕위에 오른 뒤에도 자주 경혜공주의 집을 찾을 만큼 서로 의지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인에 대해 무관심했던 문종이지만, 자신의 딸은 끔찍이 아꼈다. 이를 보여주는 듯 문종은 즉위 후 경혜공주의 사저를 만들어주었는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당시 사헌부지평 윤면이 민가 30채를 철거해 만드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중지할 것을 청했다. 그러자 문종은 경혜공주의 집이 없어 짓는 것이라며, 실제 헐리는 집이 7~8채 정도라는 구체적 수치를 들어 이러한 주장을 일축했다. 그야말로 딸바보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 계유정난이 바꾸어 놓은 비극적인 운명, 고양에 자리한 경혜공주의 묘

하지만 이러한 경혜공주의 삶은 이내 비극적인 종막을 향해 가게 된다. 그 시작은 아버지인 문종의 승하였다. 왕위에 오른 지 불과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문종의 뒤를 이어 경혜공주의 남동생인 단종이 왕위를 잇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단종 역시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인해 왕위에서 쫓겨나게 되고, 이 여파는 경혜공주의 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장 경혜공주의 남편인 영양위 정종은 유배를 떠났다가 이후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결국 거열형(=능지처참)을 당해야 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시작으로, 자신의 친동생과 남편이 ‘계유정난’이라는 한 사건을 통해서 모두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의 사릉. 해주 정씨 묘역에 안장된 것 역시 경혜공주의 아들인 정미수와 관련이 있다.

경혜공주와 정순왕후 송씨가 함께 기거했던 정업원. 지금은 영조가 친필로 새긴 ‘정업원구기비’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나마 세조는 정종과 경혜공주의 자녀에게 연좌되지 않도록 조치했고, 신하들의 반대에도 경혜공주에게 집과 토지, 노비를 주었다. 이 때문에 정종과 경혜공주의 아들인 정미수는 종친의 예로 서용이 되었으며, 관직에 오른 뒤 한성부 판윤을 거쳐 우찬성을 지냈다. 또한 훗날 중종반정 때 정국공신에 봉해지며 해평부원군에 봉해졌다. 또한 경혜공주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의 양자로 시양자로 삼았고, 이러한 인연으로 훗날 정순왕후 송씨가 세상을 떠난 뒤 해주 정씨의 묘역에 안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 친동생과 남편인 단종을 잃어야 했던 경혜공주와 정순왕후 송씨가 함께 기거했던 곳이 정업원으로, 지금도 영조가 친필로 새긴 ‘정업원구기비’가 남아 있다.

이정표와 안내문이 없는 경혜공주의 묘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충민사를 찾아야 한다.

경혜공주 묘로 올라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정종의 신도비

경혜공주 묘의 묘표

이렇듯 기구한 운명을 살아내던 경혜공주는 1473년 12월 30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세상을 떠날 당시 나이가 불과 38살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짤막하게 졸하였다는 한 줄만 남아 있을 뿐이다. 경혜공주가 세상을 떠난 뒤 지금의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묘를 조성했는데, 가까이에 최영 장군의 묘와 경안군, 임창군 묘와 굴씨묘 등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아니다 보니 별도의 안내문이나 이정표 등은 찾을 수가 없고, 따라서 찾아가는 과정이 녹록한 곳이 아니다. 경혜공주의 묘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대자동 962 번지에 있는 ‘충민사(忠愍祠)’를 찾아야 한다. 이곳은 경혜공주와 영양위 정종의 사등으로, 이곳을 기점으로 100m 가량 올라가면 정종의 신도비를 마주할 수 있다.

정종의 단. 시신이 없는 가묘로 조성되었다.

신도비를 기준으로 왼쪽의 길을 따라 300m 가량 오르다 보면 간소하게 조성된 경혜공주의 묘를 만날 수 있다. 묘의 외형은 크게 봉분을 중심으로 가운데 상석과 향로석, 장명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묘표와 함께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이 1쌍씩 세워져 있다. 또한 경혜공주의 묘 옆에는 남편인 정종의 단이 자리하고 있는데, 정종의 단은 시신이 없는 가묘로 조성되어 있다. 몇 해 전 <공주의 남자>에서 홍수현 씨가 열연했던 경혜공주, 그리고 비극적인 운명을 감내해야 했던 경혜공주의 묘는 당시의 시대상을 이야기해주는 역사의 현장으로 주목해볼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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