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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에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옹주 태실비와 태함이 있다?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08.20 07:41

앞서 소개한 동탄호수공원의 태실비와 함께 비교적 멀지 않은 안성시 원곡면 성은리에도 태실비가 있어 눈길을 끈다. 조선왕실의 경우 왕자나 공주, 옹주가 태어나면 태실을 설치했기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태실이 출현할 가능성은 언제든 상존하고 있다. 또한 생각보다 태실 관련 흔적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어지간히 인지도가 있는 태실이 아니면 그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이를 보여주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안성의 태실비를 통해 해당 인물이 누구인지, 당시의 시대상을 조명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안성 성은리 태실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의외로 안성 성은리 태실비와 태함을 찾는 과정은 어렵지 않은데, 태실비의 위치는 통심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보통 태실은 산의 정상에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실제 해당 태실도 인근의 태봉산에 흩어진 채 방치되고 있던 것을 1960년 4H회원들이 수습해 옮겨둔 것이다. 즉 조선시대만 해도 나름 관리가 되던 태실은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반전이 된다. 일제는 전국에 흩어진 태실의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태실을 한 곳에 모으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의 고양시 원당동에 위치한 서삼릉 내에 태실이 조성된 것이다.

안성 성은리 태실비와 태함의 전경
태함의 전경. 보통 태실을 조성할 때 태항아리와 함께 태지석을 부장하게 된다.

또한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태실들 역시 나라가 망한 뒤 관리의 부재로 도굴이나 파괴가 진행되었고, 심지어 태실이 있던 자리에 민묘가 들어서는 등 훼손이 가속화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안성 성은리 태실 역시 수난을 피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지금은 태봉산을 떠나 통심마을회관 앞에 자리하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참 기구한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당 태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태실의 주인공을 알기 위해서는 중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태지석과 태실비다. 이 가운데 태지석의 경우 비교적 상세하게 출생일과 이름, 장태한 날짜까지 기록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안성 성은리 태실의 경우 태지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해당 태실의 피장자를 알기 위해서는 태실비의 명문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안성 성은리 태실비. 해당 태실비의 명문을 통해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옹주(1732~1736)의 태실인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해당 태실비의 경우 마멸이 심한 편이어서 육안으로 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다행히 앞선 논문이나 자료 등을 통해 해당 태실의 명문을 알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앞면의 경우 ‘옹정십년정월초일일인시생옹주아지씨태실(雍正十年正月初一日寅時生翁主阿只氏胎室)’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옹정십년삼월이십칠일묘시입(雍正十年三月二十七日卯時立)’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하는 것은 옹정(雍正)이라는 연호다. 옹정은 청나라 세종(=옹정제)의 연호로, 위에 언급된 옹정 10년을 환산해보면 1732년(=영조 8년)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태실비의 주인공은 1732년 정월 초 오전 3시 30분에서 4시 30분 사이(=인시)에 태어났으며, 태실은 3월 27일 오전 5시 30분에서 6시 30분(=묘시)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통심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안성 성은리 태실비와 태함. 경기 남부의 몇 안 되는 태실 중 하나로 주목해 볼만한 문화재이다.

따라서 태실의 주인공은 영조의 딸인 옹주 가운데 한 명으로, 1732년에 태어난 옹주를 찾으면 누구의 태실인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영조의 가계를 살펴보면 총 12명의 딸을 두었다. 이 가운데 1732년에 태어난 옹주는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이름 없는 옹주(1732~1736) 밖에 없다. 따라서 해당 태실의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이름 없는 옹주의 태실이자 동시에 사도세자에게는 친누나가 되는 인물인 것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태실비가 확인된 경기 남부의 태실은 크게 광주와 화성, 안성 등 그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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