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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태실 - 가평 태봉리 태실은 누구의 태실일까?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09.12 03:08

전국적으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지명 중 태실(胎室) 관련 지명이 있다. 보통 태실이라고 하면 왕실에서 자녀가 출산했을 때 탯줄을 길지에 묻는 것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태실이 있는 산이라고 해서 태봉산(胎封山)으로 부르기도 하고, 마을의 경우 태봉마을(=태봉말), 태봉리(胎峯里), 태전동(胎田洞) 등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실의 풍습은 공식 기록 상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삼국사기>를 보면 충북 진천의 태령산 정상에 김유신의 태실을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가평군 상면 태봉리에 자리한 태실비. 1602년~1606년 사이에 태어난 선조의 자녀 태실로 추정된다.

한편 태실과 관련해 가장 특징적인 시기는 조선으로, 조선 왕실의 경우 왕자나 공주, 옹주 등이 태어나면 등급에 따라 미리 정해진 태실지에 태(胎)를 안치하게 된다. 보통 이 경우에 아기씨 태실비와 함께 조성이 되는데, 훗날 세자 혹은 왕자 들 중 왕위에 오를 경우 태실에 대한 가봉절차를 밟게 되어 웬만한 능에 준할 정도로 웅장한 장태석물이 배치가 된다. 따라서 왕의 태실은 외형상 능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에 지역의 경우 왕의 태실이 조성될 경우 지역의 급이 격상이 되는데, 가령 가평의 경우 기존의 가평현에서 중종의 태실이 조성되면서, 가평군으로 승격한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 가평 상면 태봉리, 마을에 홀로 남은 태실비는 무엇을 말하는가?

왕릉과 달리 태실의 경우 전국적으로 확인이 되는데, 경기도에도 상당수의 태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가평 지역을 예로 들 경우 현재까지 확인된 태실은 두 곳으로 ▲가평군 가평읍 상색리 중종대왕 태봉 ▲가평군 상면 태봉리 태실이 있다. 이 가운데 앞서 중종대왕 태봉에 관해 소개한 바 있는데, 오늘은 중종의 태실과 함께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가평 태봉리 태실비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가평 태봉리 태실비는 가평군 상면 태봉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태봉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태실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실제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태실비가 자리하고 있다.

가평 태봉리 태실의 태봉터. 태실비로 부터 300m 가량 떨어져 있다.

단 태실비가 있는 곳이 원래의 위치는 아니었는데, 최초 태실비는 태봉산 정상에 있었다. 그러다 태실이 있는 곳에 묘가 들어서면서, 태실비만 홀로 마을 입구로 옮겨지게 된다. 이때 옮겨진 곳은 연하초등학교를 지나 승찬농장과 태봉1리가 나뉘는 지점으로, 과거에는 보존 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월사 이정구 선생의 묘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세워져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으며, 나름 관리도 되고 있다. ​해당 태실비는 그간 영창대군 태실비로 소개되어 왔으며, 일부 논문이나 인터넷 등에서도 이같이 언급되고 있다. 다만 태지석이 발견되지 않았고, 태실비의 경우 마멸이 심해 출생일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견해도 있다.

가평 태봉리 태실비의 앞면은 마멸이 심해 육안으로는 판독이 어렵다. 논문이나 과거 자료를 보면 앞면에 ‘황명?력삼십(皇明?曆三十)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문제는 앞면의 경우 대개 출생일이 적혀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위의 명문만 가지고는 해당 태실의 피장자를 특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반면 뒷면의 경우는 명문의 상태가 괜찮아서, 지금도 확인이 가능할 정도인데, ‘만력삼십사년칠월이십팔일입(萬曆三十四 年七月二十八日立)’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만력은 명나라 황제 신종(=만력제)의 연호로 만력 34년을 환산해보면 1606년(=선조 39년)이 된다. 이 경우 태실을 조성한 시기는 1606년 7월 28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출생일이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해당 태실을 누구의 것인지라 판단하기는 어려운데, 태실의 조성 시기가 태어난 해와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태실비의 뒷면. 비교적 선명한 글씨로, ‘만력삼십사년칠월이십팔일입(萬曆三十四 年七月二十八日立)’이 새겨져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만으로는 누구의 태실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다만 영창대군(1606~1614)의 출생이 1606년인 것을 고려하면 태실비의 주인공일 가능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고, 같은 해에 선조와 온빈 한씨 소생의 영성군(1606~1649) 역시 태어났기 때문에 유력한 후보 중 한 사람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정보를 보면 선조의 자녀 중 1602년에서 1606년 사이에 태어난 자녀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태실지의 위치는 태실비로부터 30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태봉1리 마을회관, 태봉골 등의 지명이 있어 태실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이번 사례처럼 태실비에 지역명이 붙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는 태실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를 때 붙여지는 경우다. 대부분 도굴로 인해 태지석이 확인되지 않거나, 이번처럼 비문의 마멸이 심해 태실의 주인공을 특정하기 어렵다. 태실의 경우 조선왕조가 유지되는 동안 관리가 되었지만, 나라가 망한 뒤 일제강점기와 현대를 거치며 이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된 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저 단순히 돌덩어리에 불과한 태실이 아닌 해당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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