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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태실 -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옹주 태실인 연천 유촌리 태실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11.04 14:04

조선 왕실의 태실은 초기만 해도 하삼도(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성종 이후 경기도에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경기도에 많은 태실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가운데 경기도 연천군에도 태실이 전해지고 있는데, 미산면 유촌리에 위치한 연천 유촌리 태실의 경우 태실비가 잘 남아 있어 주목해볼 현장이다. 해당 태실의 정확한 주소는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유촌리 127번지(=산 127번지)’로 마을 뒤쪽의 그릇을 엎어둔 형태의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유촌리 태실은 산의 정상에 태실비만 남아 있는 모습으로, 과거 현장 조사를 통해 태함의 흔적이 확인된 바 있다. 지금은 땅에 묻혀 있지만, 태실비와 함께 태실의 원형이 잘 남아 있는 편에 속한다.

■ 태실비의 출생일을 통해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옹주 태실로 추정

특히 태실비에는 태주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는데, 바로 태주의 출생일이 기록되어 있다. 우선 태실비의 외형을 보면 뒷면의 경우 마멸이 심해 육안 판독이 어려운 반면 앞면의 경우 명문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태실비의 앞면에는 ‘옹정육년팔월초삼일신시생옹주아지씨태실(雍正六年八月初三日申時生翁主阿只氏胎室)’이 새겨져 있는데, 옹정 6년은 청나라의 황제 세종(=옹정제)의 연호다. 이를 환산해보면 1728년(=영조 4년)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영조의 가계에서 이에 해당하는 인물은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옹주(=제4왕녀, 1728년 생)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과 일부 논문에서는 해당 태실의 태주를 화억옹주로 표기하고 있는데, 화억옹주는 영조와 정빈 이씨 소생의 제1왕녀다. 특히 출생연도의 경우 1717년으로 확인되기에 해당 태실비의 내용과는 맞지가 않다. 따라서 해당 태실은 태실비와 <태봉등록>의 기록을 통해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옹주, 즉 제4왕녀의 태실로 봐야한다.

연천 유천리 태실의 원경
연천 유촌리 태실. 태실비의 명문을 통해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의 옹주로, 제4왕녀의 태실인 것을 알 수 있다.
태실비의 앞면. ‘옹정육년팔월초삼일신시생옹주아지씨태실(雍正六年八月初三日申時生翁主阿只氏胎室)’
태실비의 뒷면. 마멸이 심해 육안 판독이 쉽지 않지만, ‘옹정육년십월초파일묘시입(雍正六年十月初八日卯時立)’이 새겨진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태실비의 뒷면을 보면 ‘옹정육년십월초파일묘시입(雍正六年十月初八日卯時立)’이 새겨져 있는데, 출생과 태실 조성에 3개월의 시차가 있다. 이와 관련해 <태봉등록>을 보면 여자의 태는 3개월 안에 장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0월이 길월이라는 견해에 따라 장태날짜가 결정되었다. 또한 태실지와 관련해 경기도 마전현 동면 유촌(현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유촌리)으로 결정, 태실을 조성하게 된다. <태봉등록> 속 태실 조성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먼저 1728년 9월 초팔일에 태실지에 대한 터를 닦는 것을 시작으로, 9월 22일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낸 후 발태(發胎) 의식이 거행됐다. 또한 10월 초 6일 묘시에 태신안위제(胎神安慰祭)를 지낸 뒤 사후 토제를 끝으로 태실 조성이 마무리 되었다. 이후 잡물을 세우고, 도로를 닦는 것으로 유촌리 태실의 조성이 마무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태실비의 머리에 해당하는 비두
태실비의 비좌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연촌 유촌리 태실. 관심 있게 지켜볼 역사의 현장이다.

현재 남아있는 태실의 상당수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도굴 및 이장되어 원형을 간직한 경우는 생각처럼 많지 않다. 이 과정에서 태주의 존재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하는데, 이와 비교하면 유촌리 태실의 경우 태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과 태실비 및 <태봉등록>의 기록을 통해 태주의 존재, 즉 화억옹주가 아닌 영조의 제4왕녀의 태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연천 유촌리 태실은 비지정 문화재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데, 최근 화성시의 신규 문화재로 지정된 화성 정숙옹주 태실비(화성시 유형문화재 제17호)의 사례처럼, 문화재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킴이 활동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태봉등록>의 기록을 통해 태실의 조성 과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를 가지는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지점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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