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안녕동에 위치한 건릉(健陵)은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합장릉으로, 화성시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손꼽히는 장소다. 또한 수원의 경우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영우원(永祐園, 현륭원, 융릉)이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부의 읍치였던 화산(花山)으로 천봉하면서, 수원 화성이 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수원은 정조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신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건릉의 제사에 쓸 숯을 공급했던 장소가 있어 눈길을 끈다. 해당 장소는 화성에서도 한참 떨어진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로, 이곳에는 월출산과 유서 깊은 사찰인 도갑사(道岬寺)가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릉의 제사에 쓸 숯은 어떻게 만들어졌던 것일까?

■ 영암 건릉향탄봉안소(健陵香炭奉安所) 금표, 건릉의 제사에 쓸 향탄목을 보호하다

이와 관련한 중요한 문화재가 바로 도갑사로 가는 길에 위치한 건릉향탄봉안소(健陵香炭奉安所) 금표다. 해당 금표는 도갑사로 가는 길(도갑리 114-4번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영암 죽정리 국장생(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18호)에서 멀지 않은 자연 바위에 금표가 새겨져 있다. 우선 해당 바위에 새겨진 명문을 보면 ‘건릉향탄봉안소사표내금호지지(健陵香炭奉安所四標內禁護之地)’로, 여기서 건릉(健陵)은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능을 이야기한다.

건릉(健陵).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합장릉으로, 화성시 안녕동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향탄(香炭)은 향탄목을 이야기하는데, 조선 왕실의 경우 사용 목적에 맞는 나무는 봉산(封山)으로 지정해 벌채를 금지, 나무를 보호했다. 가령 우리가 금강송이라 부르는 황장목의 경우 궁궐을 만들거나 왕의 관인 재궁(梓宮)을 만드는데 사용이 되었기에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정한 사례가 있으며, 밤나무의 경우 종묘의 신주를 만드는 재료로 쓰였기에 율목봉산(栗木封山)으로 지정했다. 또한 제사에 쓸 향이나 숯의 재료가 바로 향탄목으로, 이 경우 향탄봉산(香炭封山)으로 지정되어, 나무의 벌채를 금지하고 출입을 금지했다. 그리고 그 경계에 금표를 세웠는데, 건릉향탄봉안소(健陵香炭奉安所)가 이에 속한다.

인제 한계 황장금표(黃腸禁標).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금표를 새겼음을 알 수 있다.

대구 수릉향탄금계 표석. 팔공산이 수릉에 공급할 향탄봉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과 이를 관리할 사찰이 동화사였음을 보여준다.

실제 이러한 향탄봉산을 지정한 사례로 효명세자(추존 익종, 문조)의 연경묘(=수릉)의 사례가 있다. 대구와 경북에 소재한 연경묘(=수릉)와 관련한 봉표는 크게 ▲의성 연경묘 봉표 ▲경주 불령봉표 ▲경주 시령봉표 ▲경주 수렴봉표 ▲대구 수릉봉산계 표석(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3호) ▲대구 수릉향탄금계 표석(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1호) 등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대구의 경우 팔공산이 향탄봉산으로 지정되어 이를 관리할 사찰이 동화사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사례는 순천의 송광사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순천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이 홍릉(洪陵)의 제사에 쓸 숯을 공급했던 향탄봉산으로 지정, 송광사는 이를 관리하던 사찰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건릉향탄봉산소(健陵香炭奉安所) 역시 해당 지역이 향탄봉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과 이를 관리했던 사찰이 도갑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암 건릉향탄봉안소(健陵香炭奉安所) 금표. 죽정리 국장생 인근에 있는 자연 바위에 새겨져 있다.

바위에 새겨진 ‘건릉향탄봉안소사표내금호지지(健陵香炭奉安所四標內禁護之地)’

영암 죽정리 국장생. 인근의 소전머리 황장생, 메밀방죽 옆 장생과 함께 도갑사의 경계를 표시한 장생으로, 건릉의 향탄봉산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주는 문화재다.

그렇다면 해당 봉산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위에 새겨진 명문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데, 바로 ‘사표내금호지지(四標內禁護之地)’다. 사표(四標), 즉 네 곳의 표석을 의미하는데, 실제 도갑사의 주변으로 ▲영암 죽정리 국장생(전라남도 민속자료 제18호) ▲영암 소전머리 황장생(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19호) ▲영암 메밀방죽 옆 장생(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20호)이 남아있다. 해당 장생은 도갑사의 경계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역으로 해당 명문을 통해 표석의 안쪽은 건릉의 제사에 쓸 숯을 공급하기 위한 향탄봉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금호(禁護) 즉 나무의 벌채와 출입을 금지했음을 보여주는데, 실제 해당 장생들의 위치로 본다면 꽤 넓은 지역이 향탄봉산으로 지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해당 금표는 건릉과 관련한 문화재로 귀중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존재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해당 금표를 통해 ‘건릉=봉산=부역’의 관계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관심 있게 지켜볼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