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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 드라마, ‘모성 강요 사회’에 반기를 든다
이소영 기자 | 승인 2020.11.15 17:50

엄마나이 다섯 살, 지난 5년간 나는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근래 우리집 대화의 화제는 ‘유치원’이었다. 내년에 아이가 여섯 살이 되니까 ‘유치원 한 번 알아볼까’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잠재된 ‘불안’을 건드렸다. 짧은 시간, 무려 다섯 곳의 원에서 상담을 받았다. 달라진 교육환경을 조우하고 나니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그 와중에 ‘토끼’를 잡기 위한 ‘투두 리스트’들은 계속 됐다. 집안일, 마감, 공부, 육아….

서글픔이 밀려왔는지, 가을 타는 건지, 차 안에서 이소라 노래를 듣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한 엄마가 내게 말했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혼자 마음 편하게 갈 곳이 차 밖에 없었어요.” 그날 나 역시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가 주장)이 ‘차 안’이었다.

오랜만에 내 모습이 가여웠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고,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는 시구가 딱 나 같아서였다. 그렇다. 엄마는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사람이다.

지칠 대로 지쳐있는데, tvN에서 새로 시작한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를 우연히 봤다. ‘격정 출산 누아르’라…. 어느덧 브라운관 앞에서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회사 최연소 임원이지만 최고령 산모인 현진(엄지원). 잘나가는 커리어우먼도 초보엄마가 되면 좌충우돌을 겪는다. 갑작스럽게 회사 상사와 통화를 하게 된 현진은 ‘수요’를 ‘수유로’, ‘MOU’를 ‘모유’로 자신도 모르게 바꿔 말한다. 그러곤 고백한다. 완벽한 ‘엄마’도 완벽한 ‘나’도 아닌 채로 살고 있다고.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진만 그런 것이 아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조리원 산모 리더’ 조은정(박하선)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에너자이저 쌍둥이 남자아이 둘을 키우며 속병을 앓고 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동안 난 완전히 혼자가 되었고, 아이들은 피하고 싶은 나쁜 엄마였다는 걸” 그녀의 내레이션은 엄마들이 겪는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여러 사연을 안고 사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보며, 드라마 속이지만 등장인물에 절로 동지애가 쌓여갔다. 산후조리원의 박수원 연출은 산후조리원에 대해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 정작 하나도 당연하지 않아서 오는 ‘멘붕’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지난 5년 간 나는 ‘모성 중심’ 사회에 알게 모르게 길들여졌다. 그래서 유치원 상담이 유난히 힘들었던 것이다. ‘엄마라면 이 정도 교육은 해줘야지’, ‘안 그러면 방치나 다름없지’, ‘자식 농사는 성공해야지’ 등등의 말은 내게 죄책감을 안겨줬다.

그로부터 며칠 후 자주 가는 아이 병원에서 만난 50대 여의사(엄마선배)에게 난 통쾌한 해답을 들었다. 유치원 상담을 하니 하는 말, “엄마! 엄마 발전에만 신경 쓰세요. 아이는 잘 자라고 있어요!”라고.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충분하다고. 그날, 난 비빌 언덕은 ‘엄마인 나 자신’만이 아니라 ‘좋은 조력자’를 곁에 두는 것이라는 해답을 얻었다.

코로나19는 엄마들을 유난히 힘들게 만드는 바이러스다. 어렵게 이어가던 일을 그만둔 엄마들도 많고, 권고사직을 당한 이들도 적잖다. 우리는 이럴수록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모성 신화에 반기를 들며 ‘라떼파파’들을 더 많이 길러내야 한다.

산후조리원 드라마가 더 흥했으면 한다. 관심은 구체적인 언어로부터 시작하니까. 내가 처한 사각지대를 구원해 하나 뿐인 생을 사랑해보고 싶다. 박준 시인의 책에 빗대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말하고 쓰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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