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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둔동을 중심으로, 수원의 농업 유적을 찾아서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22.01.20 07:55

2022년 7월이면 옛 농촌진흥청 부지에 국립농업박물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현재 막바지 공사가 진행 중으로, 향후 국립농업박물관을 중심으로 인근의 여기산과 축만제 일원, 구)농촌진흥청과 구)서울대학교 농대 등의 농업 관련 흔적들이 주목된다.

수원 농업의 중심지였던 구)농촌진흥청

지금은 타계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자신의 저서인 <제3의 물결>에서 제1의 물결은 농업, 제2의 물결은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산업화를 상징하는데, 제3의 물결은 앞선 두 차례의 물결을 뛰어넘는 과학과 정보의 사회로 대표된다고 봤다. 이러한 흐름에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측했던 책이 제3의 물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1물결에 해당하는 농업은 역사, 아니 세계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착을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창덕궁 청의정(淸漪亭). 정자 앞쪽에 논이 있고, 이곳에서 수확된 볏집을 활용해 청의정의 지붕을 이었다.
친경례(親耕禮) 재현 모형

수렵과 채집 사회에서 농업 기술의 발전과 생산은 여러모로 의미를 가진다. 특히 곡식의 경우 저장이 가능했기에 과거처럼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당장 농업은 조선시대까지도 국가의 중요한 근간으로, 괜히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농업의 장려를 위해 <농사직설>을 비롯한 농서의 보급이 이루어졌고, 국왕이 직접 땅을 가는 행사인 친경(親耕)이 있을 정도였다.

문명사적으로 보면 농업은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바로 정착사회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는 계급의 등장과 노동의 분화로 나타났다. 또한 공동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만들어지고, 문자가 등장하는 한편 사법과 행정 체계가 만들어지며 점차 국가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들판의 논은 단순히 벼를 생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이었던 것이다.

■ 농업의 중심지, 수원의 농업 유적을 찾아서

이처럼 수원과 농업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장소가 여기산과 축만제 일원, 구)농촌진흥청이다. 가장 먼저 여기산에서는 선사 유적지가 확인되었는데, 시기는 주로 청동기와 철기 시대로, 집터 및 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여기서 중요하게 바라볼 지점은 불에 탄 볍씨가 출토된 점이다. 이는 선사시대에도 여기산을 중심으로 벼농사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여기산에는 농학자이자 육종학자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묘가 있다.

여기산의 전경

축만제 일원은 조선 후기의 농업 중심지로, 정조는 수원 화성을 축성한 뒤 축만제와 만석거 등의 저수지를 만들었다. 저수지가 필요했던 건 농업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데, 초기에는 주로 농지에 바로 파종하는 직파법(直播法)이 유행했으나 이후 모판에 모를 심어 키운 뒤 옮겨 심는 방식의 이앙법(移秧法)으로 변화했다. 때문에 필수적으로 물이 필요했는데, 실제 정조 때 저수지가 만들어진 뒤 전국적인 가뭄에서도 수원만은 예외였다고 한다. 따라서 축만제는 정조의 권농정책을 잘 보여주는 현장으로, 현재 축만제는 만석거와 함께 세계 관계시설물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축만제 표석과 여기산
제방에 심어진 노송. 저수지와 제방, 논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박문회 송덕비

한편 정조는 수원 화성을 축성한 뒤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의 외영을 수원에 두었다. 이 과정에서 장용영 군사들의 자급자족을 위해 축만둔(祝萬屯)을 조성했다. 축만둔으로 인해 이곳의 지명은 서둔동(西屯洞)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유는 수원 화성의 서쪽에 있는 둔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축만제를 서호(西湖)라 불렀는데, 이유는 수원 화성의 서쪽에 있는 저수지라는 뜻이다. 이러한 축만제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흔적이 바로 축만제 표석으로, 전면에 ‘축만제(祝萬堤)’가 새겨져 있다. 또한 제방을 걷다 보면 조성 당시에 심은 노송들을 볼 수 있으며, 축만제의 개수에 금전적 기여를 한 박문회 송덕비가 남아 있다.

항미정(杭眉亭). 1831년(순조 31) 화성유수인 박기수가 세운 정자다. 항미정의 이름은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서호 구국민단의 결성지다.
권업모범장. 잠업시험소 표석
농촌진흥청 경내에 있는 녹색혁명성취탑

항미정 뒤쪽에는 구)농촌진흥청이 있는데, 이곳에는 주목해볼 표석이 있다. 바로 1884년 개설된 종합농업시험장인 농무목축시험장과 일제강점기 때 세운 농업연구기관인 권업모범장, 양잠과 제사 등의 연구를 진행한 잠업시험소 표석 등이다. 이들 농업연구기관이 수원에 세워진 건 표면적으로 선진 농업을 전수해준다는 명목 아래 실제로는 쌀 수탈을 위한 전진기지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게 해방 이후에 농촌진흥청이 들어서며 농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지금도 농촌진흥청 경내에는 1977년 식량자급을 기념해 세운 녹색혁명성취탑(綠色革命成就塔)이 있다. 왜 이탑이 수원에 세워졌는지, 왜 농업이 혁명으로 인식되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볼 현장이다. 향후 국립농업박물관을 중심으로, ▶여기산 ▶우장춘 박사 묘 ▶축만제(축만제 표석, 노송, 박문회 송덕비) ▶항미정 ▶구)농촌진흥청 ▶권업모범장, 잠업시험소 표석 ▶녹색혁명성취탑 등을 주목할 것을 권한다.

■ 서둔동, 농업 혁명의 길을 따라서

한편 국립농업박물관을 중심으로, 여기산과 축만제 일원, 구)농촌진흥청과 함께 주목해야 할 장소가 바로 구)서울대학교 농대다. 이곳을 중심으로 의미있는 현장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가장 먼저 서둔교회를 들 수 있다. 서둔교회는 1953년 9월 23일에 중앙농업기술원 화학과 실험실에서 첫 예배(43명)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서둔교회는 서둔야학의 전신으로, 1954년 서둔교회에서 시작된 성경구락부가 그 시초였다. 또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키군에 의해 세워진 앙카라 고아원과의 관계도 주목된다. 따라서 서둔교회는 단순한 종교시설이라기 보다는 당시 서둔동 일대의 지역사회와 교육의 측면에서 함께 조명해야 할 현장인 셈이다.

앙카라 학교 공원
당시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벽화

한편 서호초등학교의 맞은편에는 앙카라 학교 공원이 있다. 앙카라는 터키의 수도로,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터키군이 전쟁으로 인해 생긴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세우고 가르쳤다. 이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영화 <아일라>가 지난 2017년 개봉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이를 기리기 위한 앙카라 학교 공원이 만들어졌다. 현재 공원에는 기념비가 조성되어 있으며, 서호초등학교 내에는 앙카라관이 있고, 명예 도로명 주소 역시 앙카라 길이다. 또한 앙카라 학교 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당시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구)서울대학교 농대 입구에 세워진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안내문
상록회관. 지금은 경기도업사이클플라자로 활용되고 있다.
경기상상캠퍼스

서울대학교 농대부지는 과거 서울대 농대가 있던 곳으로, 그 역사는 1899년 상공학교로 시작해 ‘관립농상공학교-농림학교-수원 농림학교’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조선총독부 농림학교-농림전문학교-조선총독부 수원고등농림학교’로 교명이 바뀌었으며,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으로 편입되었다. 이를 보여주듯 이곳은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 운동지로,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비밀 결사운동을 전개한 장소다. 한편 서울대 농대는 격렬했던 학생운동의 단면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김상진(1975년)은 유신체제와 긴급조치에 항거하며, 할복하기도 했다. 지금은 서울대 농대가 이전하면서 옛 부지는 창업지원센터와 남은 반쪽은 경기상상캠퍼스로 구성되어 있다. 빨간색 벽돌의 박물관 건물과 옛 도서관 및 강의실 건물 등이 그대로 남아 있고, 지금은 전시관과 공연장 등의 복합문화공간 등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서둔야학

마지막으로 수원시 권선구 탑동 539-2번지에는 서둔야학 유적지가 있다. 서둔야학은 1954년 서둔교회의 성경구락부가 시초로, 이후 서울대 농대 학생들이 선생님이 되고, 인근의 청소년과 소외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진행했다. 그 기간이 1965~1983년까지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은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던 현장인 것이다. 지금은 옛 건물이 남아 있으며, 출입구 쪽에 수원 서둔야학 유적지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이처럼 서둔동을 중심으로, 수원의 농업과 관련한 여러 흔적들을 마주할 수 있다. 곧 있을 국립농업박물관의 개관과 함께 ▶여기산과 축만제 일원, 구)농촌진흥청 ▶서둔교회, 앙카라 학교 공원, 구)서울대학교 농대, 서둔야학 등이 있는 수원의 농업 유적이 있는 길을 따라 한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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