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기자의 창) 카트를 끌며 이동권을 생각하다
서지은 기자 | 승인 2023.11.04 17:34

30여 년 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큰 불편함이 없었다. 교통이 좋은 동네에 살아서 그렇기도 했고 다행히 두 다리가 건강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런 장애 없이 인도와 차도를 편히 이용했다는 사실을 언제 깨달았냐면 첫 번째는 임신했을 때다. 당시는 이미 자동차로 근거리 이동을 하던 터라 인도를 걸을 일이 별로 없었다. 사람이 붐비는 인도의 혼잡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불쾌감에서 한 발 멀어져 있다가 임신 후 운전을 안하고 다른 곳을 이동하다 보니 이전과 다른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 30살까지 아무렇지 않게 다니던 인도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한 모든 길이 위협적이었다. 거리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흡연자들과 울퉁불퉁한 도로(임신부는 발도 붓고 배도 나오고 작은 불균형에도 쉬이 넘어질 수 있다.)가 힘들었다. 거기에 지하철이라도 한 번 타려면 긴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하는데 그걸 피하려면 엘리베이터 있는 곳까지 걸어야 한다. 이러나저러나 힘들다.

아이를 낳고 나서 본래 몸으로(돌아오지 않지만) 돌아와서는 괜찮았을까? 유아차를 밀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도로의 울퉁불퉁함과 작은 턱이 주는 장애, 자동문이 아니라서 겪는 어려움, 끝없는 계단 앞에서의 절망 같은 것들을 30년 동안 몰랐던 게 신기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유아차를 밀지 않게 되고 아이와 자동차로 돌아다니다 보니 이러한 감각들도 잊고 있었다. 당시에 이런 환경이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불편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다 오늘 카트를 끌고 외출하고 나서 신체가 불편하거나 짐을 든 사람은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불편한 환경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아이 레고 상자가 무거워서 바퀴 달린 카트를 가지고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고민하다가 버스를 타면 카트를 접어서 보관하는 게 귀찮을 것 같아서 지하철을 선택했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는 순간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계단은 아니지만 장애인 휠체어가 탈 수 없는 에스컬레이터는 카트도 힘들었다. 엘리베이터까지 가기 힘들어서 일단 에스컬레이터에 탔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야 하는 신분당선이 이렇게 깊은지 평소에는 몰랐다. 지하철에 탑승하고 나니 카트의 부피가 문제다. 자리에 앉아서 카트를 무릎 앞에 두니 서 있는 승객들에게 민폐다. 카트는 민폐인 물건일까? 여행 캐리어는?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혼잡할 때 서 있는 승객들은 발에 걸리는 카트나 캐리어를 마주하면 짜증 날 것이다. 장애인들은 어떨까? 휠체어 탄 장애인이 혼잡한 지하철에 승차하면 곱게 볼까?

신분당선에서 3호선으로 환승해야 하는 데 이번엔 에스컬레이터가 더 길고 사람도 엄청 많다. 이번엔 멀어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로 했다. 머리 하얀 노인분들 사이에 카트를 끌고 아이와 타려니 민망하다. 3호선은 승강장 폭이 좁아 카트를 끌기에 더 힘들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승차하고 하차했는데 아이고야. 안국역은 엘리베이터도 안 보이고 에스컬레이터도 없다. 손으로 카트를 들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계단, 카트나 휠체어가 놓일 공간이 부족한 것에 대한 점도 불편했지만 도로도 만만찮았다. 울퉁불퉁해서 끄는 데 힘들 뿐 아니라 곳곳이 턱이어서 카트를 들거나 요령 있게 끌어야 했다. 카트 끄는 걸 아이가 좋아해서 본인이 하겠다고 해 맡겼는데 보고 있자니 답답함 그 자체다. 이는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도로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카트도 힘든 데 휠체어는 어떻겠는가.(도로 폭 자체가 휠체어가 진입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오랜만에 다시 한번 소수자의 불편함을 떠올렸다. 누구도 환경 때문에 자신의 이동권에 제약받지 않는 사회가 하루빨리 되었으면 좋겠다. 카트는 이동권이 아니고 옵션이니까 상관없지만 오늘 내가 겪은 불편함이 누군가에게는 이동권이니까.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지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6310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 966(조원동)  |  대표전화 : 010 5414 6723  |  팩스 : 031)373-8445  |   등록번호 : 경기, 아51402
등록일 : 2016.08.09  |  발행인 : 조백현  |  편집인 : 조백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백현 대표   |  이메일 : mail@newstower.co.kr
Copyright © 2023 뉴스타워.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