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탄이 머리위로 또 날아 들었다.
“김씨, 지금 우리 밀리고 있는 건가”
“그런가 봅니다. 아까 우리 앞에 있었던 사람들 전멸한 거 같아요. 우리도 곧 ......,”
얼굴에 피 칠을 한 김씨가 두렵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두렵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천진한 어린아이의 얼굴을 한 생물들이 총을 들고 무차별로 사람을 쏴 죽이는 광경은 소름이 돋는다. 어디서 저런 괴물들이 왔는지 나는 알지도 못하지만 분하고 두려웠다.
임시 분대장인 나는 얼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앞서 있었던 전열은 무너진 같았다. 두 번째 열에 잇던 우리가 이제는 최전방에 잇는 셈이다. 12명의 분대원 중 죽은 사람은 아직 없다. 그러나 적들이 재정비를 마치고 다시 진격해 온다면 목숨을 보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적들의 무기는 직사화기보다 곡사화기가 더 무섭다. 마치 골키퍼를 넘어 골대에 들어가는 축구공처럼 긴 타원을 그리며 날아오는 소형포탄이 있다는 이야기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다.
나는 분대원들을 모이게 했다.
“포탄이 길게 날아옵니다. 적보다 우리가 아래쪽에 위치하면 지금보다 포탄을 피할 수 있는 확률이 높으니까 아래쪽 경사면에 참호를 파고 들어가되 참호를 비스듬히 파야합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습니다.”라며 지시를 내렸다.
아직도 멍한 귀에 손바닥을 가져다대면서 나는 김씨를 다시 한 번 응시했다. 나를 형처럼 따르던 동네 사람이다. 우리 분대원들 중 대부분은 출퇴근을 하면서 한두 번쯤은 볼 얼굴들이다.
분대원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처음 군인 대신 자이라 협곡을 지키러 간다고 했을 때는 모두가 자신 있어 했다. 뉴스에 나오는 적군의 생김새가 청소년들과 생김새가 비슷했고 자이라 협곡은 시민들의 쉼터이기 때문에 큰 위협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막상 와서 보니 뭔가 군에서 착각을 한 모양이다.
적들은 숲속에서 인간들보다 훨씬 빨랐다. 행동 또한 눈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육탄전이 아닌 화력싸움에서 우리가 밀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참호를 다 파기도 전에 전방에서 포탄이 날아오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엎드려!”
곧 우리도 앞서 있었던 부대원들처럼 적들과 직접적으로 마주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총을 움켜쥐었다. “그래 와라!”
돈 버는 것에 소질 없다고 매일 타박만 당하면서 마누라에게 죽어 사느니 이렇게 죽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전방에서 총소리와 함께 적들이 밀어닥치는 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고양이처럼 빠르다.
분대원 전체가 응사를 했지만 그들의 진격속도를 늦추지는 못했다. “정말 빠르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눈앞에 어디쯤 그들이 달려 나 갈 것을 미리 예측을 해서 사격을 하는 편이 나았다.
그나마 일부러 우리가 언덕아래 참호를 파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적들이 노출되기 때문에 그들의 전진을 일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부대원들은 아직도 상위를 고집하다 일부 전선에 구멍이 나는 듯 했다.
손과 어께에서 총의 진동에 의한 전율이 느껴진다. 총소리가 마구 뒤섞이면서 총소리의 소음은 이제 소음이 아니다. 분대원 들중 한명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나왔다.
“누구?”
눈에 핏발이 섰다. 며칠 전만 해도 평범한 사람이었던 박경기씨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름이 ‘경기’라고 해서인지 유난히 축구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동네에서 수의사를 하고 있던 또 다른 박씨가 박경기씨의 상태를 보고 이미 죽었다는 의사표시를 해왔다.
지금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고 있는 적들은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들일 게다. 총을 다시 들고 말했다.
“최대한 나무 뒤에 숨고,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냥 앞으로만 쏘세요.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일어서서 후퇴하면 오히려 죽을 확률이 높았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후퇴하고 싶지만 후퇴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경만 기자 jkmco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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