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간암으로 투병 중인 강기훈 씨가 마침내 유서대필의 누명을 벗어났다. 자살방조 누명을 벗어나는데 무려 24년이 걸렸다.

14일 대법원 2부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에 따라 유서대필 관련 재심을 청구한 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은 당시 검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사법부, 언론 등이 합작한 정권 차원의 조작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법과 정의, 국가의 존재 의미가 완전히 무너졌다.

우리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사죄의 말조차 없는 정부나 사법부와 한 하늘 아래 사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다. 이들에겐 한 인간의 삶과 인권을 짓밟는 일은 아무런 일도 아닌 모양이다.

1991년 봄. 명지대학교 강경대 학생이 경찰의 구타로 숨지자 전국은 "폭력 살인 만행 자행하는 노태우 정권 퇴진하라"는 대중의 요구가 폭발했다. 당시 한 달 이상 전국의 도로에는 분노한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고, 학생과 노동자들의 분신이 잇따랐다.

한때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 집어치우라’는 자극적인 글을 올리며 변절의 신호탄을 확실히 쏘아 올렸다. 역사적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공안 검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을 근거로 강 씨를 전민련 간부 김기설 씨의 유서대필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강 씨는 결백을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강 씨에게 ‘자살방조죄’로 징역 3년,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야는 유서대필 사건의 영향으로 도덕성이 송두리째 무너졌고, 공안당국의 탄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슬픈 2015년의 봄은 역사를 거슬렀다.

그런데 강 씨의 유서대필 사건이 무려 24년 만에 국가의 조작에 의한 파렴치한 범죄 행위임이 드러난 것이다. 너무 기가 막혀 이 상황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국가는 평생 자신의 삶을 옥죄었던 강 씨의 주홍글씨와 시한부 인생, 그리고 민주화를 후퇴시킨 역사적 과오에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답해야 한다.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은 대법원의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건으로 민주화운동 전체가 시련을 겪었다. 24년이 지난 오늘 무죄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지만 감격스럽다기보다는 비통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강 씨의 변호인 측은 “무죄 판결은 끝이 아니다”면서 “변호인단은 앞으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작업을 해나갈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의 말처럼 국가의 유서대필 조작 사건은 대법원의 판결로 결론이 난 것이 아니고 이제 시작이다.

먼저 법과 정의를 세워야 할 검찰과 법원, 국가권력은 거꾸로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한 개인의 삶을 사법살인 한 것에 대해 사죄부터 해라. 다음으로 사건 조작에 관여한 인물들을 철저히 찾아내 이들에게 법적, 사회적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역사적 범죄 행위에 대해 엄격히 처단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강기훈이 또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일제와 독재의 청산을 제대로 못 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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