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병원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의사 A 씨는 진료시간 이후 진료실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Z 씨에게 수면 마취제인 미다졸람 5㎎을 생리식염수 100㎖에 희석한 용액과 마취제인 나로핀 7.5㎎, 베카론 4㎎, 리도카인 등 10종의 약물을 포도당 수액 1ℓ에 희석해 주사하였다. Z 씨는 30분 후에 위 주사액 때문에 사망하였다. A 씨는 어떤 죄로 처벌받게 될까(사망에 대해서만)?

A 씨가 Z 씨를 일부러(고의) 죽였는지, 아니면 실수(과실)로 죽게 하였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고의라면 살인죄로, 과실이라면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형법
제250조(살인, 존속살해) ①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제268조(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고의는 객관적 행위상황을 인식하고 구성요건(構成要件, 형법에서 금지되거나 요구되는 행위가 무엇인가를 추상적·일반적으로 기술해 놓은 것)을 실현하려는 의사를 말합니다.
과실은 사회생활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 또는 태만함으로써 구성요건적 결과발생을 예견하지 못하거나 회피하지 못한 경우를 말합니다.

고의범과 과실범은 처벌의 정도에 있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결과를 낳더라도 고의범이 과실범보다 무겁게 처벌됩니다. 사람을 사망하게 하였어도, 고의범인 살인은 살인,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지만, 과실범인 업무상과실치사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잠깐 샛길로 빠집니다. 징역과 금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징역은 죄인을 교도소에 가두어 노동을 시키는 형벌입니다. 금고는 죄인을 교도소에 가두는 형벌입니다. 차이가 보이시죠?

범인이 고의로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그대로 과실범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범인이 실제로 고의로 범행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실범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의의 유무는 범죄가 발생하게 된 경위, 범행의 방법, 결과, 범인의 사회적 지위, 전과 등 객관적인 자료에 비추어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신이 아니어서 범인의 의사를 바로 알 수는 없기에 위와 같은 객관적인 자료를 보고 범인의 의사를 추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례의 약물 칵테일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기에 충분하고, 미혼인 Z 씨가 기혼인 A 씨에게 거액을 주지 않으면 내연관계임을 폭로하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었으며, 모두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병원 진료실에서 Z 씨에게 위 약물 칵테일을 주사한 것이라면, A 씨가 Z 씨를 고의로 죽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례의 약물 칵테일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 위험성이 있는 정도이고, Z 씨와 A 씨는 모두 미혼으로 사이좋은 애인관계였으며, A 씨는 속칭 잘나가는 의사였다면, A 씨가 Z 씨를 과실로 죽게 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익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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