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등산 생태 시민조사단 활동 모습. ⓒ오산환경련

혁신교육을 지향하는 운산초등학교의 학부모 생태 동아리의 일원인 나는 우연히 오산환경운동연합의 소식지에 게재된 광고를 보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마등산 생태 시민조사단’이라니... 이거야말로 아이들과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우리 고장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명분도 되지만, 무엇보다 독서나 청강이 아닌 현장에서 발로 걸으며 오감을 통한 살아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활동은 첫날부터 조금 다른 내적 결과물을 낳았다. 부산동 롯데 연수원 뒤, 도로의 옹색한 모퉁이에 서 있는 두 그루의 한국 자생 왕버드나무를 만나면서, 자연을 교육적인 소재만으로 폄하했던 나의 생각이 부끄러웠다. 마치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뒷방으로 내 몬 채 잊어 버리고 산 듯 한 죄의식과 비슷했다.

작년에 오산환경련에서 주관했던 생태 안내자 양성교육과 운산초등학교에서 자체 실시한 학부모 생태보조교사 교육과정을 이수하면서, 단지 일상의 배경이나 잠깐의 쉼터에 지나지 않았던 자연이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적인 소재로 연결될 때 진심으로 대했으며, 여타의 생활에서는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사고로 자연을 대상화했고, ‘가전제품 플러그 뽑기’ 같이 주부가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수칙도 몸에 배어 있지 않았다.

이백년 가까이 이 땅을 지키고 산 나무는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 한다. 고관대작의 아흔아홉 칸 기와집은 아니더라도, 제 몸 크기 만큼의 숨 쉴 만한 땅은 소유해야 하지 않을까? 한평 정도로도 보이지 않는 밑둥의 공간에는 숨막히게 시멘트로 메워져 있다. 서너명 밖에 안되는 인간가족은 삼사십평대의 건물에 살면서 말이다.

집중 조사지인 부산동 지역은 오산에서 사람들이 가장 오래전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던 곳이다. 마을을 보듬는 산 기슭에 세워진 사당과, 그 옛날 마을의 원로들이 부락민들의 생필품 재원으로 활용하고자 조성한 이대 군락이 정겨웠다. 족히 이백년이 되어 보이는 엄나무 할아버지와 아흔 살쯤 되신 느티나무 할머니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보였으며, 가죽나무와 밤나무, 참나무가 산사의 신장처럼 서 있다.

산등성이를 오르다 보면 오동나무, 생강나무, 노간주나무, 개암나무, 붉나무, 덜꿩나무, 산벚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보인다. 큰키나무들 사이로 국수나무나 초피나무들처럼 작은키나무들이 햇님을 나눠 받아 자라고 있고, 담쟁이를 비롯한 청미래와 청가시, 댕댕이덩굴, 참마 등의 걸치기 식물들이 또 하나의 층을 이루며 살고 있다. 지면 가까이에는 늘 수줍은 제비꽃을 비롯하여 쇠뜨기, 뽀리뱅이, 애기똥풀, 미국자리공, 무릇 등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한해살이 또는 여러해살이 풀이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산을 사랑하는 이유는 함께 사는 방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무 한그루가 있다. 하지만 나무 혼자만이 아니다. 담쟁이가 밑에서 기어 오르고 있으며, 나뭇가지에는 청설모가 연신 오르락 내리락 하고, 딱따구리가 구멍 집을 만들어 전세로 살고 있다. 속살은 곤충의 먹이로 공양하고, 드러나 있지 않은 뿌리는 분해자로서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온갖 미생물로 바글거린다. 그 뿐인가 우리는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로 숨을 쉬며, 한 순간도 화석연료의 사용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에게 나무는 죽어서까지 분신공양하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의식주가 이루어지는 하나의 세상이다. 나무가 심어져 있는 산은 우주보다 더 큰 가치를 지녔다.

마등산 곳곳에는 심심찮게 수피가 벗겨진 나이 먹은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힘들게 나무를 자르지 않고 고사시키는 방법이다. 벗겨진 나무들을 볼 때마다 내 살 가죽이라도 벗겨내어 이식해 주고 싶다. 참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왜 나무를 고사시킬까? 최근 부는 개발바람 때문일까?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 멀리 그리고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십분만 걸어도 머리가 맑아지는 상쾌한 공기를 뿜어주는 나무들, 외롭고 울적할 때 들으면 가슴이 후련한 직박구리의 고함소리, 우리 아이의 놀이 친구가 되어 주는 곤충 친구들, 어느 것 하나도 이 산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 없이는 우리 또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선미  마등산 생태 시민조사단원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