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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우 ‘한국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 ⓒ김태우 | ||||
“가난이 소 아들이라(소처럼 죽도록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난이 싸움(모든 싸움의 원인이 가난에 있다는 뜻으로 가난하여 작은 이해에도 다툼이 생긴다는 말)”, “가난이 우환”, “가난이 원수”, “가난이 죄다” 같은 속담과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말들이 줄줄이 엮여 떠오른다.
가난은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라지만, 2014년 대한민국에서 가난은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아니 그 이상으로 부끄럽다.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가난이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감정마저 가난하게 만든다면 그들의 사랑은 초라하고 가난하다.
집합의 포함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영국의 존 벤(John Venn)이 고안했다는 벤다이어그램으로 가난의 풍경을 그려보자. 일반적으로 가난은 개인 능력의 여부, 가치, 운수, 존엄성, 가능성, 병과 죽음, 결핍, 탄생, 사랑, 굶주림, 전쟁까지 엮이지 않는 게 없을 정도의 교집합을 가진 단어다. 심지어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신경림)라며 가난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한 젊은이의 아픔을 그린 시인의 성찰도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십구만 원을 가지고 풍족하게 살아가는 강철 정신을 가진 사람도 있는 세상에 가난이 무슨 큰일인 것처럼 말하느냐고 타박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가난은 가벼운 무게가 아니다. 가난은 부유함보다 무겁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자신이 짊어진 가난에 무게를 더하며 로또를 산다. 오늘도 작은 희망을 절박한 마음으로 희박한 확률에 걸어본다. 재미로 놀아야 할 경마장에서, 강원랜드에서 생계를 저당 잡히고 기적 같은 헛된 꿈을 굴린다.
일반적으로 복지국가는 가난의 문제를 사회 전반의 문제로 접근하고, 종교국가나 성장 중심의 국가는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모두 다 내 탓”인 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난은 혁명과 범죄를 낳는다.”(『정치학』, 1265a44.)고 말한다.
노예와 주인의 복종과 명령의 문법, 자연의 존재 이유가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나 당연한 시절에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난의 문제는 철저히 개인적인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정치학』에서 스파르타를 언급하며 재산은 개인이 소유하되 사용은 공동으로 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physikon’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재산 공유제를 비판하며 '선심'을 꺼낸데 그의 오류가 있다. 선심이 필요한 사회란 누군가 결핍을 겪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류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그 불평등을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로 대하느냐에 따라 개인과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달라진다.
마땅히 무언가를 해야 할 당위當爲(sollen)가 사라진 시대를 걷는 우리의 자세를 생각한다. 나는 과연 이렇게 살아도 좋은 걸까,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가난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면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고민하는 그대에게 존 롤즈의 『정의론』은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조심스레 말해본다.
“정의와 부정의에 대한 어떤 합의의 기준이 없을 경우, 서로 이익이 되는 체제의 유지를 보장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그들의 계획을 조정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불신과 원한이 시민적 유대를 좀먹으며, 의혹과 적개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행동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정의관이 갖는 뚜렷한 역할은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주고 적절한 배분의 몫을 정해주는 것이며, 그렇게 하는 방식은 효율이나 조정, 그리고 안정의 문제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정의론』, 39쪽)
가난을 소재로 이 글을 쓰고 있는 2014년 8월,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위해 죽음의 문턱까지 오가며 단식을 하다 병원에 드러누운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밥 한 톨 넘기기 힘들 정도로 아이를 그리워하고 세상에 분노하는 그의 마음이 안타까우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가난 때문에 부정의가 묻히는 일이 없길, 또다시 이 나라의 아이들이 세월 속에 잊히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김태우 ‘한국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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