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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우 ‘한국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 ⓒ김태우 | ||||
성서에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창세기 1:3)는 부분이 있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나눈다는 뜻의 구분區分이 생겼다는 얘기다. 그런데 구분區分은 사람마다 똑같이 나누어주는 구분口分이 되기 힘들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벽하게 자유롭지도 않고 완벽하게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빛은 모든 곳을 골고루 비추지 않는다. 어둠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는 더 크고 많은 자유를 얘기하고 누군가는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없는 평등을 얘기한다. 천자문엔 해와 달은 차고 기운다는 일월영측日月盈昃이 있다. 주역에서 나온 말로 세상 만물은 고정되지 않고 오르내리며 순환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이 말은 현재의 불평등을 참고 견뎌 내세를 기다리라는 비의悲意로 들리기도 한다. 참는다는 말이 인내가 되기도 하고 예속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싸움은, 내가 사는 동네 골목길에서, 사랑을 말하는 연인 사이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학교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공장에서, 시청에서, 국회에서, 천 원짜리 잔치국수를 파는 시장에서, 그네가 있는 놀이터에서, 인천아시안게임이 진행되는 경기도 이곳저곳에서, 신의 이름을 외치며 자신이 죄를 지은 사람은 잊고 오로지 신에게만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후미진 어둠 속에서, 백주 사거리에서, 익명의 실명이 사는 모니터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싸움의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어떤 싸움은 정정당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싸움은 도대체 왜 싸우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때로 어떤 싸움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구경꾼으로 머무르기도 한다. 때론 열심히 싸우고 응원하기도 하고 때론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어떤 싸움은 우아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싸움은 진부한 표현으로 진흙탕처럼 지저분하기도 하다. 심지어 귀여운 싸움도 있다. 때로 싸움이 없는 곳, 싸움이 없는 시간도 있겠지만 언제 어디에나 싸움은 존재한다.
난 얼마 전까지 존의 이매진을 들으며 싸움이 전혀 없는 그런 세상을 꿈꿨다. 나는 아직 백만 년도 살지 못했지만 싸움이 없는 세상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오늘도 뉴스엔 누군가를 참수했다는 끔찍한 소식이 들리고, 내가 이 글을 연재하고 있는 물향기신문의 조백현 기자는 정의를 위한 외롭지만 당당한 싸움을 하고 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죽은 대통령과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을 두고 목숨을 걸 것처럼 싸우는 익명의 사람들이 있고, 저녁마다 주차하며 싸우는 이웃들이 있으며, 소주를 마시다 마징가와 태권브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 암컷 모기와 수컷 모기 중에 어떤 모기가 피를 빨아먹는지를 두고 내게 전화해서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다. 내 조카는 내게 또봇이 좋은지 뽀로로가 좋은지 선택하라고 한다. 또봇과 뽀로로라, 아주 힘든 질문과 대답이다.
싸움의 기술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 고등학생이 같은 학교 학생들의 괴롭힘에 지치고 화가 나서 깡패에게 싸움을 가르쳐달라는 조금 터무니없는 것 같으면서 어쩌면 개연성이 넘치는 오락 영화다. 백윤식이 깡패로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그는 학생의 요구에 터무니없다는 듯 무시한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가 우리가 친구라 부르는 학교의 학생들에게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자 싸움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괴롭히라는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맞고 다니지 말라는 뜻일 거라 생각한다. 영화야 어쨌든.
어쨌든 싸움이 없는 곳은 없다. 세상은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으며 완벽하게 평등하지도 않다. 그저 우리는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길 바라고 그렇게 행동한다. 투표하고 토론을 하고 때로는 우아하지 않게 주먹다짐을 한다. 분명히 상처가 될 걸 알면서, 때로는 실수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드러운 혀에서 나온 독한 말을 한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냥 떠나버리기도 한다. 그 말들은 때론 오해로 남기도 하고 때론 진실일 때도 있어 우리를 아프게 한다. 싸움이 없는 세상은 없을까?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잘 싸우는 일이다. 때론 배려하고 침묵하고, 싸울 때는 내일 볼 수 있을 것처럼 싸워야 한다. 오늘이 마치 끝인 것처럼 싸우다가는 정말 오늘이 끝일 때가 많다. 내일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싸우면 어떨까.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고 싸우면 어떨까. 일단 서로의 말에 공감하도록 노력하고 사실이 아닌 것은 지우개로 지워가며 사실들을 확인하며 그 사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싸우면 어떨까. 실체 없는 거짓과 탐욕이 아니라 일단 누군가의 끼니를 채워주고 억울함이 없도록 예쁘게 싸울 수는 없을까.
벌써 누군가가 나를 두고 몽상가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 같은 몽상가 한 명 있으면 어떤가. 그대, 싸우자! 예쁘게, 사랑하면서 베틀.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하여
나는 울어본 역사가 있는가
진정 슬픈 영혼을 위하여
울어본 일이 있는가
오늘도 낙타는 바늘구멍으로 다이빙하고
소주를 마시며 너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흐릿해진 너의 눈동자에는 추억이 없다
말소된 저 하늘의 별이며
강가의 물푸레나무 버드나무며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며
말소된 추억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난다
아련한 아지랑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울어본 사람과 강가의 물푸레나무 아래서
마주 보며 느긋하게 똥 누고 싶다
-김민의 추억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난다 전문.
김태우 ‘한국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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